나도 밥 먹다, 울컥

신중년의 일상

by 마마래빗

글 잘 쓰는 셰프 박찬일의 산문집 ‘밥 먹다, 울컥’을 읽으면서 나에게도 그런 짠한 친구가 있었다. 그 시절 그녀의 강단 있는 모습이 떠오르며, 지금은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아니, 꼭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녀의 이름은 영미였던 걸로 기억한다. 어느 날 큰 도로에서 들어와 윗동네와 아랫동네로 나뉘는 세모꼴에 점방(구멍가게)이 뚝딱 생겼다. 아주 작은 슬레이트로 쳐진 가건물엔 조그만 점방과 방 한 칸이 있었는데, 자식 네 명에 부모님을 비롯하여 모두 여섯 식구가 살았다. 그 점방은 윗동네, 아랫동네 사람들의 유일한 잡화점이었으며, 텔레비전이 귀했던 그 시절에 작은 텔레비전이 있어서 김일 선수가 나오는 레슬링이라도 하는 날이면 그 좁은 가게 앞의 평상에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모여들어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응원했다. 그런 날의 영미는 어른들의 막걸리 주문으로 왔다 갔다 심부름하느라 더더욱 바빴다. 사람 좋고 술 좋아하는 영미 아버지의 지나친 음주는 판 것보다 그냥 주는 게 많아서, 영미 엄마와의 싸움으로 번져 쨍그랑 술 사발이 깨지고 상이 엎어지며 걸쭉한 욕설이 난무한 적도 종종 있었다. 그래도 영미네 작은 가게는 온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로 활기가 넘쳤다.


영미는 어린 동생을 업고도 고무줄놀이, 공기도 악착같이 잘하고, 남자아이들과 딱지치기, 구슬 따먹기도 잘하여 어린 남동생에게 갖다 주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바쁜 엄마를 대신하여 밥뿐만 아니라 반찬도 곧잘 했다. 동갑이지만 영미는 나보다 한참 세상을 더 잘 아는 언니 같았기 때문에 난 그 아이를 좋아했다. 나의 어머니는 그들 가족의 상스러움을 싫어하여, 그 아이와 친하게 놀지 말라고 했지만, 난 전혀 개의치 않고 그녀와 다녔다.


어느 날, 영미와의 하굣길에 그녀의 집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수군거림과 울음소리와 함께 망치와 해머를 든 장년의 아저씨들에 의해 한순간에 집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울음과 통곡 소리는 영미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이 내는 소리였다. 방금까지 같이 웃고 왔던 영미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굳어 있었고, 창백한 얼굴에 손을 불끈 쥐고 떨고 있었다.


무허가 주택이라 구청에서 나와 부순 것이라는 이야기로 그날의 사건을 알 수 있었다. 그 후 영미네는 한동안 부서진 곳을 대강 손질하여 살다가 뿔뿔이 돈을 벌기 위해 떠났다. 영미도 중학교로 진급하지 못하고 서울의 공장으로 갔다. 그렇게 내가 좋아했던 자존심 강하고 그 누구보다 똑똑했던 영미에게 잘 가라는 인사도 못 하고 헤어졌다.


세월이 흐르고 대학생이 된 나는 무허가로 대강 지어진 집을 새롭게 짓고 있는 것을 보았다. 몇 년 전 화병으로 술에 빠져 지내던 영미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영미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만 살던 그 집을 영미가 공장에서 일하여 보낸 돈으로 새로 짓게 되었다고 한다. 13살의 영미는 집을 떠난 뒤 한 번도 온 적이 없었다. 그날의 불끈 쥔 손이 다시는 내 가족에게 슬픔을 주지 않겠다고, 그래서 악착같이 돈을 모으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한동안 영미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은 그 집에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영미 어머니가 영미를 꼭 닮은 어린 여자아이를 업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영미의 딸이라고 했다. 나이 차이가 좀 있는 남자를 만나 아이를 낳았고, 부부가 함께 봉제 공장을 하여 아이를 돌볼 수가 없어, 대신 봐주는 것이라며, 영미네가 돈을 아주 잘 벌어서 곧 서울로 가서 함께 살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가족은 소리 없이 동네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나 또한 그녀를 잊게 되었다.


나의 어릴 적, 강단 있고 그 누구보다 자존심 강한 나의 영웅, 영미. 어디선가 어릴 때 고단한 삶을 추억처럼 이야기하며 살고 있기를, 그리고 13살 영미가 선택한 삶이 굴곡 없이 늘 평탄했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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