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년의 일상
어머니는 90을 바라보는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노인이시다. 항상 누구에게나 먼저 말을 걸고, 혼자 외톨이로 어울리지 못하고 배회하는 사람을 보면 불러서 함께 어울리게 하신다. 늘 웃으시며 또래 어르신들과 잘 융합하시지만,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은 크시다. 복지관이나 경로당 같은 곳은 절대 가지 않으시고, 몇 달 전 여름날에도 관리실 앞의 정자에서 비슷한 또래의 어르신들과 모여 시간을 보내신다. 땀을 뻘뻘 흘리며 고작 부채질로 더위를 식히시면서도, 그곳에서 오후 내내 보내며 주변을 산책하는 것으로 만족하며 여름을 보내셨다.
유독 어머니보다 7살이나 어린 한 어르신은 어머니께 “전 형님이 좋아요. 나중에 죽을 때도 함께 죽어요”라고 말할 정도로 따르셨다. 또, 무엇이든 먹거리를 가져와 친한 몇몇 어르신들께 나눠 주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셨다. 이 어르신도 처음에는 주변을 배회하시던 분이었는데, 어머니가 불러 함께 어울리게 하신 이후로 유독 어머니를 잘 따르게 되었다.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늦게 나가시면 전화를 할 정도로,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를 통제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전직 미용사였던 이 어르신은 미용실에 가서 파마하고 싶어 하시는 어머니를 굳이 불편한 정자에서 직접 파마를 해 주신다든지, 본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 어르신과는 어머니가 대화도 못 하게 한다든지 하는 행동을 했다. 가끔 어머니가 지나가는 말로 하시는 말씀 속에서 어머니의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고, 나는 “지나치게 친절한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으니 조금 거리를 두시는 게 좋겠다”라고 조언했지만, 어머니는 “괜찮다”라고 넘기셨다. 그러더니 결국 사달이 났다.
그 어르신과 단둘이 산책을 하던 중, 경로당에서 놀다 지나가던 한 어르신이 반갑게 나오셔서 어머니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걸었다. 그러다 보니 두 분이 대화에 집중하면서 걸음이 느려졌고, 자연스럽게 그 어르신은 앞서 빠르게 걸어가셨다. 그런데 그분이 집으로 돌아가버리는 뒷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그제야 "아차!" 싶었다고 하셨다. 평소 그 어르신이 대화하지 말라고 한 분과 어머니가 이야기를 나눈 것이 원인이었다. 그다음 날부터 그분은 어머니께 아는 척도 안 하고, 가져온 먹거리도 어머니만 빼놓고 나눠주셨다.
지난여름에도 비슷한 일이 한 차례 있었는데, 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두 번의 경험 끝에 어머니도 처음 며칠은 “곧 괜찮아지겠지” 하셨지만, 점점 마음이 불편해지셨는지 “서울에 가서 얼마 동안 머물고 싶다”라고 하셨다. 늘 “내 방이 최고”라며 서울에 있는 동생집에서도 일주일을 못 버티고 돌아오시던 분이, 이번에는 서울에 가겠다는 말씀을 하신 것을 보니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셨을지 느껴졌다. 그날 밤 내내 걱정스러웠는데, 자고 일어나신 어머니는 “괜찮다”라고 하셨다. 다행히 오늘과 내일은 비가 온다. 그 핑계로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 계시라고 말씀드렸지만…
80을 넘어서도 또래 집단에서의 갈등은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대체 그분의 심리는 무엇일까? 어머니 말씀처럼, 어머니를 따르다가도 정작 대화하지 말라고 했던 그 당사자에게는 엄청 잘해 주는 그 행동은 전형적인 못된 아이의 행동 같다. “내 평생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오래 사니 별일을 다 겪는다 하시는 어머니께, 내가 해 드릴 수 있는 말은 그들과 어울릴 필요가 없다는 것뿐이었다. “그곳에 있는 분들 모두 먹을 것에 현혹되어 말 한마디도 못하는 어르신들일 뿐”이라며 달래 드렸지만, 진정 배움과 상관없이 지혜롭고 참된 어르신은 드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