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길
일단 재미가 없다. 감동이 있는 스토리, 감성이 있는 예술작품, 보람이 느껴지는 의미 있는 활동이 아니기 때문이다(내 기준에서). 살아있고 기억이 있는 한, 이러한 느낌과 지식은 내면에 들어오는 순간 영원히 있게 되고, 생각할 거리를 준다. 주식과 같이 기업의 가치와 미래에 대해 분석하며, 숫자와 데이터들을 바라보고, 고민하고, 시간을 쏟기엔 짧은 내 인생이 너무 아깝다. 시간은 유한하다.
남는 게 돈 밖에 없다. 돈이 남으면 좋은 거 아닌가? 그것도 운이 따라야 남는다. 매우 높은 확률로 주식으로 인한 자산이 늘어난다고 가정을 하더라도, 돈이란 것 자체가 소비되는 것이고 쓰지 않은 돈은 아무 의미가 없다. 반면 위에서도 말했듯이 내면적인 활동은 내 기억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남는다. 내게서 생각을 받은 사람은 내 생각을 감소시키지 않고서도 가르침을 얻는다. 그런데 기억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없어지지 않는가? 영원한 것도 있다. 내면적 활동을 하면서 얻는 깨달음과 핵심 기억들, 감성들은 자신도 모르게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있고, 그것들이 모여 나의 인격을 만들고 나의 가치관을 이루게 된다. 내가 죽기 전에 드는 생각이, 돈과 같은 물질적인 것이 아닌 가족과의 행복했던 추억들과 같은, 감정적인 것들이었으면 좋겠다.
물욕은 끝이 없다. 한때 주식투자에 시간을 너무 쏟지 않고 인생을 즐기며 자산도 불리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역시나 조절이 쉽지 않았고, 물욕은 끝이 없었다. 하루 종일 주식 생각이 들어 하루에 몇 번이고 휴대폰 주식어플을 켰다. 이익을 보면 그 쾌감에 더 몰입하고, 손해를 보면 그 스트레스에 잠을 못 이룬 적도 있었다. 엄청난 이익을 보면 마음 편하게 그 이득을 즐기고 더 시간을 쏟지 않을 것 같았지만, 그 순간적인 쾌락은 더 큰 쾌락을 불러왔다. 외적인 목표 추구는 한계가 없다는 속성 때문에 이득을 보면 볼수록 더 큰 목표를 추구하게 된다. 쾌락과 목표가 점점 커지는 것이다. 잘되든 못되든 물질적인 면이 나 자신의 내면에 영향을 준다. 그러한 영향력이 커지는 것은 내게 그리 달갑지 않다.
남들과 비교하게 된다. 안 그래도 인터넷의 영향으로 주위 사람들은 물론이고 세계 모든 사람과 비교하기 쉬운 시대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부익부 빈익빈은 일반적이다. 이를 고려해볼 때, 남들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아지는 것은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 주식투자를 하게 되면 성공적인 투자정보를 얻기 위해 주식을 하는 많은 사람들과 비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상장한 수많은 기업인들의 정보와 실적 있는 투자자들의 정보도 필요하다. 그런 정보들의 노출은 비교로 인한 질투, 시기심, 좌절감으로 이어진다. 직접 기업을 운영하고 사업을 즐기고 시드가 넘치는 사람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다. 시드의 크기가 곧 수익의 크기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자본가, 생산자의 위치가 얼마나 기득권에 놓이게 되는지 몸소 깨닫게 되는 순간, 그 자리에 올라서기 위한 경쟁구도가 심화되면서 개개인의 시간과 감정 소모,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같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지만 그 수익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에 대한 불만, 다른 한쪽에선 반대의 이유로 자신의 부를 과시한다. 불만의 해소든 성취감의 과시든, 그에 따른 과소비가 따라오고, 그 사치는 곧 필수가 되어 버린다. 자산이 그대로인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자산이 줄어드는 것은 못 참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시드가 없다. 내가 게으른 베짱이 스타일이기도 하고, 저축을 할만한 여유도 없다. 미래와 아이를 생각하면 여유자금이 꼭 필요한 건 사실이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일상에서 부족함을 느끼면서까지 저축과 투자를 할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 이유도 역시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의 힘듦이 미래의 편의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비관적으로 들리겠지만 내일 당장 교통사고로 죽을 수도 있고, 시한부 암을 선고받을 수도 있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현재의 삶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최소한의 대비와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한 인사이트를 갖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균형이 필요하다. 다만 시드를 만들기 위해 부족함을 느끼면서 돈을 모으는 것보다는, 현재의 삶을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베짱이보다 개미가 더 편히 노후를 보낼 확률은 더 높지만 말이다. 측정하기 불가능하지만 죽기 전까지의 행복의 크기를 비교해보면 어떨까? 개미와 베짱이 중 누가 더 행복했을까?
쓰다 보니 주식투자에 실패한, 돈 없고 능력 없는 한 인간이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자신의 인생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것이기 때문에, 이런 논리로 정신승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생각하기 나름이고, 정답은 없는 듯싶다. 인생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