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결핍의 굴레

욕망은 결국, 결핍에서 태어난다.

by 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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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은 결국, 결핍에서 태어난다.

결핍이 없는 사람은 욕망도 없어 보인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늘 여유로워 보이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여유가 없어 보인다.

무엇이 나를 지배하는 걸까? 내 안의 결핍은 무엇이며, 그것이 나를 어떤 욕망으로 이끌어 이렇게 많은 시간을 쏟게 만드는 걸까?

때로는 그 욕망이 밑 빠진 독일 수도 있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 그 독에 물을 붓기 위해 시간을 쏟아붓고 있는 나 자신을, 조금 멀리서 바라보자. 그러면 나의 결핍이 무엇인지, 그 답이 보일지도 모른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이기에 때론 가치 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필멸자인 인간에게 시간은 한정된 자원이다. 결국 언젠가는 죽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값진 것이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다른 사람이 대신하는 것은 돈이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시간보다 돈이 더 낫다’고 말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것은 애초에 돈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원치 않는 일을 계속하면, 필연적으로 결핍이 생긴다. 자유의 결핍, 여유의 결핍,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시간의 결핍. 사람은 결핍을 채우려 욕망을 품게 되고, 그 욕망은 결국 돈을 향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하기 싫은 일을 피할 수 있는 시간을 사기 위해, 다시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시간을 쏟는다. 마치 끝없이 반복되는 쳇바퀴 같다. 이 모습은 그리스 신화 속 시시포스(Sisyphus)를 떠올리게 한다. 시시포스는 신들에 의해 큰 바위를 산 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는 벌을 받았지만, 바위는 정상에 도착하는 순간 다시 굴러 떨어진다. 그리고 그는 다시 그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한다. 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 고통스러운 노동처럼, 돈을 위해 시간을 희생하고, 다시 시간을 얻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우리의 삶도 비슷하지 않은가?

반대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며 즐거웠던 순간들을 떠올려 보자. 그리고 그 순간들이 만들어졌던 환경과 필요한 요소들을 생각해 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나의 진짜 가치관이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떠났던 여행의 어렴풋한 기억들.

동네에서 친구들과 게임과 농구를 하고, 자전거도 타며 철없이 놀던 날들.

락밴드 시절, 내키는 대로 여행하고, 공연하며, 연습에 몰두했던 순간들.

도서관에 하루 종일 틀어박혀 온갖 책 속에 빠져 있던 시간들.

아내와 아들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쌓여온 수많은 소소한 추억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했던 추억들이 가장 많이 떠오른다. 물론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 만큼 대부분이 나랑 비슷할 것이다. 함께했던 그 순간들을 돌이켜보면, 특별히 물질적으로 많이 필요한 것은 없었다. 오직 ‘누군가’와 함께할 ‘시간’, 그리고 ‘결핍’만 필요했을 뿐.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는 상대방에 대한 결핍, 즉 외로움이 DNA에 새겨져 있다. 그것은 신체를 개조하지 않는 이상 피할 수 없는 본능이며, 결국 채워야 하는 것이다.

다른 결핍은 태초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기에 마음먹기에 따라 충분히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때 귀족 문화, 종교 문화, 군사 문화는 상업을 저속하고 부패한 것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18세기에 이르러 잉글랜드와 네덜란드에서 상업은 도덕적이며 희망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물질문명 속에 살고 있다. 돈은 곧 종교이자 문화이며, 신과 같은 존재가 된 세상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에 맞춰 자신을 바꿀 것인가, 아니면 세상을 자신에게 맞게 바꿀 것인가? 아마도 전자가 현실적으로 더 많으리라 생각되지만, 나는 후자가 더 마음에 든다. 결국, 생각하기 나름이지 않은가. 실제로 사회적 인식이 저렇게 변하는 동안 인간의 뇌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현재의 한국은 과거에 비해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훨씬 더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늘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비만과 운동 부족이 사회적 이슈가 된 세상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먹고살기 힘들다’고 말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치명적이었을 질병조차 쉽게 치료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이제는 수명 연장을 원하고 있다.

물질은 돈과 마찬가지로 계량화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방과 비교하기도 쉽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사회일수록 상대적인 결핍의 늪에 빠지기도 더욱 쉬운 것이다.

내가 태어난 1980년대 이후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발달로 소비문화가 확산되고 고도성장으로 인한 일 중심 문화가 지속되었다. 거의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개인 여가시간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좋지 않은 것 같다. 바쁜 것이 미덕이고 돈 없는 백수는 악덕인 세상.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가진 자는 백수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도 아르바이트를 하든 어떤 방법으로든 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을 벌 수는 없다. 누구나 수명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돈이 있지만 시간이 없어 즐거운 순간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돈과 시간이 충분해도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가 무엇인지 몰라 다시 일을 찾는 사람도 있다. 풍요로운 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자원은 타인의 관심과 시간이다.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알 수 있는 ‘느린 시간’과 즐거울 때 흘러가는 ‘빠른 시간’ 말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나 자신을 위한 한정된 시간은 결핍을 채우려는 데 쓰이며 계속 낭비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도서관 사서가 꿈이었지만,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여유를 선택해 외국계 기업에 들어갔다. 사서가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직업이라면, 지금 직장은 일도 월급도 그저 무난한 수준이다. 만약 경제적으로 더 큰 욕심을 낸다면, 더 높은 연봉을 받지만 업무 시간과 강도는 훨씬 센 곳으로 이직하는 선택도 가능하다.

이 세 가지 선택 중, 어떤 길이 가장 적은 결핍을 느끼면서도 적당한 욕망을 채우고, 가능한 한 많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나조차도 알기 힘든,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만약 욕망을 채워야만 행복해질 수밖에 없다면, 인간이 가진 가장 근본적인 결핍, 즉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그 결핍을 채울 수 있는 방향으로 선택하는 것이 가장 현명할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결핍이 무엇인지 찾아내어, 그것이 밑 빠진 독이라면 보다 균형 잡힌 독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 결핍에 대한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은 이제 절반도 채 남지 않았다. 남은 소중한 시간은 나 자신과 주위 사람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쓰고 싶다.

암 전문의가 말기 환자에게 하는 전형적인 조언은 ‘여기, 이 순간을 살라’는 것이다. 언제가 너무 늦은 순간이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에, 완벽한 때를 기다리며 일을 미뤄서는 안 된다. 지금의 긴 시간도 결국 수많은 순간들로 쪼개질 수 있다. 그렇기에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지금 이곳에서 내가 해야 할 일,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모든 시간은 ‘지금’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만약 내게 남은 시간이 하루, 이틀, 한 달 뿐이라면, 지금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더욱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자기 스스로 느끼기보다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더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더욱, 남에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내면이 필요하다. 그 내면의 목소리가 자랑하고 비교하는 상대방의 목소리들에 묻히지 않길 기도한다. 그것을 하기 위한 한정된 시간이 허튼 결핍에서 비롯된 욕망에 휩쓸리지 않기를.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내어주는 시간이 각자에게 소중한 선물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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