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문득 친구들의 대화를 듣다 보니, 다들 삶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나 또한 일을 하며 몰입이 주는 깊이와 그 정점에서 느끼는 효능감을 겪어보았기 때문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이 행복하고 재미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다. 나에게 일은 그저 삶의 본질을 지탱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수행해야 하는, 비중이 낮을수록 좋은 활동일 뿐인데 말이다.
과학과 역사책을 보다 보면, 인간은 매우 미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절감한다. 칼 세이건이 얘기했던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한 지구에서 한 인간은 우주의 먼지와 다름없다. 이 보잘것없는 존재에게 본질적인 인생의 의미가 과연 존재할까? 물론 곤충이나 다른 생물에 비해선 더 큰 인생의 가치가 있다고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의미를 찾기 위해 스스로 어떤 대상이나 관념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는 존재일 뿐이다. 친구들에게는 그것이 '일'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명예'나 ‘건강’ 일 수도 있다. 보잘것없는 먼지가 부여하는 의미 중에 무엇이 더 가치 있는지 따지는 것도 우습긴 하다. 그러나 이왕 우주의 먼지로 살다 갈 것이라면, 나라는 한 조각 먼지의 경험에만 갇혀 있기보다 다른 이들이 쌓아온 수많은 인생을 경험해 보는 것이 더 가치 있지 않을까?
난 그것이 스토리라 믿는다. 유발 하라리가 말했듯, 호모 사피엔스가 문명을 이룩한 원동력은 가상의 이야기를 믿는 힘이었다. 스토리는 간접 경험이다. 직접 경험은 여행이나 일, 운동 등 나의 신체를 이용하는 활동이고, 간접 경험은 독서나 영화, 음악, 게임 등 창작자가 만들어 놓은 캐릭터나 세계의 일부분이 되어 간접적으로 경험해 보는 것이다. 이것은 흔히 단순한 유희로 여겨지며, 이런 활동으로는 아무런 물질적 보상도 없기 때문에 가치 있는 활동이라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직접 경험의 한계를 넘어 과거와 현재, 미래, 나아가 가상 세계까지 넘나들며 인류가 축적한 거대한 서사를 간접 체험하는 일이다. 난 인간의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고, 다양한 세계를 경험해 보고 싶다. 나에게는 이것이야말로 유한한 생을 확장하는 아주 큰 의미를 가진다.
또 하나의 거대한 축은 가족이다. 이는 내 신체적인 한계에서 비롯된 의미이고 존재의 이유이기도 하다. DNA에 새겨진 생존과 번식, 그리고 사회적 동물이라는 본능에서 기인한 실존적 가치다. 나, 가족, 친구, 직장 등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바운더리가 커질수록 개인이 부여하는 의미는 희석되기 마련이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나의 존재가 온전히 인정받고 행복을 나눌 수 있다. 가족과 함께 애착을 쌓고 추억을 만드는 시간은 내 존재의 이유 그 자체다.
결국 내 인생의 두 가지 핵심 가치는 “문화 활동”과 “가족과의 시간”이다. 냉정하게 말해 건강, 돈, 그리고 일은 이 두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한 기저(Base)이자 도구일 뿐이다. 도구는 없어서도 안되지만 효율적일수록 좋다. 즉, 목적을 위해 투입되는 시간과 에너지가 적을수록 내가 진짜 지향하는 가치에 쏟을 수 있는 자원은 늘어난다.
물론 일 자체에서 '깊이의 서사'를 찾거나 사회적 성취를 통해 가족의 안녕을 지키는 삶도 존중한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과 불확실한 보상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나는 일에 매몰되어 삶의 다른 가능성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 일터에서의 숙련도보다 세상의 다양한 스토리와 풍경과 소리를 감상하는 즐거움이 내게는 더 크기 때문이다. 나는 일만 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꿀벌 같은 삶보다는, 세상의 수많은 스토리를 경험하고 공유하며 가족에게 다정한 기억으로 남는 삶을 선택하고 싶다.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그저 눈앞의 휘발성 도파민에 눈이 멀어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는지? 사회적 시선과 분위기에 휩쓸려 나만의 행복을 방치하고 있지는 않는지? 가끔은 자신을 멀리서 지켜보며 이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유한한 인생의 끝에서 내가 마주하고 싶은 것은 ‘사회적 성공’이 아니라 ‘나 자신의 후회 없는 만족’이기 때문이다. 내가 떠난 뒤 사랑하는 이들의 기억 속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지도 내겐 큰 의미이다. 내겐 나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내 가족들에게는 나에 대한 다정한 기억이 선명히 남기를 바란다. 우주적 스케일로 보면 꿀벌이든 인간이든 똑같은 먼지겠지만 나만의 이런 고유한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고 싶다. 비록 이것이 욕심일지라도, 어쩌면 이것이 먼지가 부릴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욕심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