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는 만들어진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의 거울이다

by 곤이

자식을 키우다 보면 언성이 높아질 때가 있다. 도대체 왜 저런 말투와 행동을 할까 싶을 때 훈육의 차원에서 목소리가 높아지고, 말에는 감정이 실린다. ‘친구에게 배웠어?’ ‘유투브에서 봤어?’하며 추궁 아닌 추궁을 하곤 한다. 그런데 나중에 와이프가 한 마디 한다. 그게 다 나를 보고 배워서 그렇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곰곰이 나 자신의 행동, 말투, 낯빛을 생각하면 부정할 수가 없다. 내가 원인 제공자였다. 너무나 뻔한 사실인데 『논어』를 읽어 봤던 나 자신도 쉽게 잊고 있었다.




공자가 말하길,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에는 자식의 뜻을 살펴보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자식의 행동을 살펴보라. 삼 년 동안 아버지의 가르침을 바꾸지 않으면 효라고 말할 수 있다.” (子曰: 父在, 觀其志. 父沒, 觀其行. 三年無改於父之道, 可謂孝矣.)


사람의 드러난 행위만으로 효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행위는 얼마든지 꾸밀 수가 있고, 마음과 다르게 표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는 자식의 마음과 행동을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나 돌아가신 후 삼 년까지 살펴볼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때까지 아들은 아버지의 가르침 (道)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래서 자식은 아버지의 뜻에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하는 식으로 이해되기도 하였다. 누군가가 아버지에게 효를 실천하고 동시에 남들에게도 인정을 받으려고 하면 상당히 높은 허들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또 다른 의미가 숨어 있다. 바로 ‘효자는 부모가 만든다’는 점이다.


‘道’를 ‘가르침’이라고 번역하지만, 원래 ‘길(path),’ ‘말하다’도 함께 의미한다. 부모의 가르침이라고 해서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의미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부모의 가르침이란 부모가 걸어 온 삶의 행적 전체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자식은 부모의 모습을 보고 배우며, 자신의 기준으로 삼는다. 따라서 부모가 자식이 효 실천하기를 원한다면 스스로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위에서 공자가 ‘아버지의 가르침을 바꾸지 않으면 효’라고 해서, 부모의 잘못된 가르침이나 행적을 무조건 따르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만약 부모의 올바르지 않은 생각과 행동을 따른다고 한다면, 자식도 잘못된 길을 걷게 되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의 사랑을 받고 싶으면 먼저 자식을 사랑해야 하고, 정의롭거나 이타적인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면 먼저 그렇게 사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를 바라보며 배우는 관계이다.


다른 예로 재아宰我와 공자가 삼 년상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재아는 삼 년상이 너무 길다며 일 년으로 줄이길 원했다. 이유는, 첫째 삼 년상을 치르게 되면 예법을 공부하거나 실천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며, 둘째 일 년상을 치르더라도 자기는 마음이 편안할 것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재아의 의견에 반대를 하면서 부모의 사랑을 상기 시키고자 하지만 결국에는 재아의 경우 일 년상을 치러도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재아가 떠나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재아가 바깥으로 나가자, 공자가 말하였다: “재아의 인애롭지 못함이여! 자식이 태어나서 삼 년이 흐른 다음에야 부모의 품을 벗어난다. 삼 년상은 천하의 공통된 상례이다. 재아는 부모로부터 삼 년의 사랑을 받았는가?” (子曰: “予之不仁也! 子生三年, 然後免於父母之懷。 夫三年之喪, 天下之通喪也。 予也, 有三年之愛於其父母乎?”)


공자의 관점에서 볼 때, 아기가 태어나 삼 년 동안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최소한 그 시간만큼 보답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재아는 부모에 대한 사랑이 상대적으로 없기 때문에 ‘인애롭지 못하다’고 힐난하였다.


그런데 마지막 구절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재아는 부모로부터 삼 년의 사랑을 받았는가?’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물은 이유는, 어쩌면 재아의 부모가 자식에 헌식적이지 못하였음을 확인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을까? 삼 년의 사랑이 꼭 ‘첫 삼 년’이 아니라 부모의 사랑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재아가 일 년상을 치르더라도 자신의 마음은 편안할 것이라고 말한 것은 그만큼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결과이다.




결국 자식이 바르게 자라고 그렇지 못한 데에는 부모의 책임 크다. 간단하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말이겠지만, 부모가 올바른 삶을 사는 것이 자식 교육의 출발점인 셈이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2년이 지났다. 돌아가신 후에 정말 아버지 생각 많이 하게 된다. 함께 나누던 추억도 생각하지만, 어떤 문제를 맞이하거나 나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 생각할 때, 아버지는 어떻게 하셨을까? 뭐라고 말씀 하실까?를 물으면서 기억 속의 아버지 모습을 바라 볼 때가 많아졌다. 나의 자식도 나중에 나와 같은 생각을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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