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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란 무엇일까? 구글에 찾아보니 학술적 정의로는 '자신의 욕구 실현이 저지당하거나 어떤 일을 강요당했을 때, 이에 저항하기 위해 생기는 부정적인 정서 상태'라고 한다. 내가 본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분노는 조금 더 일반적인 내용이다. '부정적인 감정에 의해 호전적인 행동을 하기 쉬운 상태' 정도로 학술적 정의에서 조건을 빼보았다. 일종의 화 정도로 그 의미를 격하시킬 수 있다.
나 그리고 내 주변의 인물들은 아무리 지켜봐도 분노에 찬 상황을 자주 목격할 수 없다. 이건 우리 나이대의 특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것에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합리화나, 나의 감정적 동요가 어떠한 결과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허무감, 무력감일수도 있겠다.
주변에 분노나 화에 자주 노출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굉장히 긍정적인 신호이다. 분노는 사치보다 더 낭비적인 행위일 것이다. 탐욕이라하면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마음이고, 만약 그로 인해 손해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분노나 감정 동요로 일어나는 손해보다는 크지 않을 것이다.
스토아 학파의 대표 철학자 중 한 명인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는 분노에 대해서, '분노는 일시적인 광기이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 본인 스스로를 잃는 것'이라고 말했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면 나를 잃는 것이라는 의미는, 소크라테스노란 무엇일까? 구글에 찾아보니 학술적 정의로는 '자신의 욕구 실현이 저지당하거나 어떤 일을 강요당했을 때, 이에 저항하기 위해 생기는 부정적인 정서 상태'라고 한다. 내가 본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분노는 조금 더 일반적인 내용이다. '부정적인 감정에 의해 호전적인 행동을 하기 쉬운 상태' 정도로 학술적 정의에서 조건을 빼보았다. 일종의 화 정도로 그 의미를 격하시킬 수 있다.
가끔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진정이 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다. 하지만 세네카는 우리에게 분노를 다스릴 수 있는 실증적 방법론까지 제시하곤 했다. 첫 번째로는, 분노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 다음은, 분노를 그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의 분노를 다스리는 것, 분노에 어떻게 빠지지 않을 수 있는지 서로 이야기 하고, 분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분노한 사람들을 어떻게 제 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를 순서대로 알아보라고 한다.
또한, 분노라는 것은 7분을 넘어가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흔들리는 마음과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는 우리는 시간을 갖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분노라는 것이 우리 스스로 절제할 수 없다면 아래의 일화를 읽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왕이였던 캄비세스 2세가 이집트를 정복하고 난 뒤 연회시간을 갖고 있었는데, 그 중 한 신하가 캄비세스 2세에게 연회 중 과음을 자제하라고 충언을 하였다. 그에 대해 캄비세스 2세는 본인이 취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동시에 신하에게 공포를 심어주고자 하였다. 그래서 신하에게 '너의 아들을 불러오고, 화살과 사과를 준비하라'고 하였다. 14세기 스위스 전설인 윌리엄 텔 처럼 신하의 아들 머리 위에 사과를 올려두었고, 모든 신하들이 숨죽여 지켜보았다.
캄비세스 2세는 활을 당기고 정확히 화살을 발사하였다. 화살은 신하의 아들의 심장을 정확히 관통하였고 피가 벌컥벌컥 나왔다. 그 순간, 신하들은 공포에 떨었다. 그러나 죽은 아들을 두고 신하는 이렇게 말했다.
"폐하, 아폴로 신조차 이렇게 정확히 쏘지는 못할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진정한 명사수이십니다"
이 한 마디에 신하가 분노를 숨기고, 생존과 복종에 대해서 동시에 표현한 것이다.
이런 행태에 이의를 제기하며 '한 번 더 쏘아보십시요. 과연 그 때도 손이 떨리지 않으시는지 보고싶습니다"라고 말한다면, 모든 가족을 몰살 할 수도 있다는 공포심에 그렇게 말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극단적으로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분노를 유발하기 충분한 이 상황에서도 분노를 절제할 수 있다는 사실관계를 설명하는 일화이다.
세네카는 이 일화에 대해 평가하기를 왕에게 술을 절제하는 편이 어떻냐고 제안하는 것 보다, 캄비세스 2세에게 생존을 위해 아부를 떠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판단했다. 차라리 사람의 피가 아닌 술을 즐기는 자의 손에는 술잔이 들려 있을 때가 진정한 평화일텐데 술을 먹지말라는 만류가 결국 괜한 분노를 일으킨 것이라고 하였다.
캄비세스 2세 왕의 분노와, 나의 분노 모두 우리는 절제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준 것이다. 또한, 이런 일화을 통해 알 수 있겠듯 막대한 권력 앞에서 우리는 분노를 극단적으로 숨길 수 있다는 것이다.
분노를 억누르는 것이 비참한 굴종이 아닌, 분노가 나에게 종속되었을 때, 즉 내 선택에 의한 지혜일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얻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