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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제목은 최근 가까운 사람에게 추천해 준 책에서 내가 생각하기에 그 저자인 귄터 그라스가 책을 통해 하고자 하는 핵심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귄터 그라스의 '게걸음으로'라는 책에 대해 짧게 설명을 하자면,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발생한 빌헬름 구스틀로프호 침몰 사건이라는 실화를 기반으로 하는 비극에 대한 내용이다.
해당 빌헬름 구스틀로프호 사건은 역사상 발생한 모든 해상 사고 중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비극적인 사건임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접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 이유로는, 발생한지 오래되어 휘발되었거나 혹은 귄터 그라스가 콕 집은 다른 한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사건이 발생하게 된 배경은 소련군을 피해 발트해로 탈출하던 당시 동독일 피난민 약 7,000~10,000 명을 태워 출항을 하였으며, 피난민 중 대부분은 여자와 어린아이였는데 소련 잠수함의 어뢰공격을 받아 침몰되었다고 한다. 그중 약 1,200명만 성공적으로 구조되었다고 알려진다.
'게걸음으로'라는 책의 주인공은 파울이며, 위 침몰 사건이 일어난 날은 주인공인 파울이라는 작은 생명이 세상에 처음 나오게 된 날이며, 파울의 아버지는 전사하게 된 날이다. 그리고 파울은 그 후 독일에서 기자로 성장하는 이야기와, 주인공인 파울의 아들인 콘라트의 삶을 비추는 내용의 책이다.
꼭 이런 내용을 다루고 싶었던 자세한 이유를 서술하기 전, 이 책의 저자인 귄터 그라스가 직접 밝힌 '게걸음'에 대한 정의에 대해 설명해주고 싶다.
귄터 그라스가 정의 내린 '게걸음'이란, 게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옆으로만 움직이는 생물이지만, 옆으로 기어가는 삶의 방식은 겁쟁이의 걸음이 아닌 생존의 걸음이라고 한다.
이런 단순한 생물학적 비유를 떠나, 역사적, 철학적, 인간적 의미에서 내린 의미는 이렇다.
게걸음이란, 1) 인류는 과거를 청산하지 못하고 옆으로만 기어가는 존재라는 정의와, 2) 인류는 역사를 통해 전혀 배우지 못하는 것에 대한 개탄과, 3) 역사는 직선적으로 앞으로만 나아가지 않고 뒤틀린 반복을 일삼는다는 걸 의미한다.
귄터 그라스는 당시 독일 사회가 나치를 통해 자행한 수많은 죄를 직접 마주하지 않고, 침묵과 회피로만 대응했던 과거의 독일의 태도에 대한 비판이지만, 그 태도는 단순히 직면할 용기가 없어서가 아닌, 살아남기 위해 택한 복잡한 방식이었다라고 한다.
내가 이 책을 다루고 싶었던 이유와, 초반에 말했던 저자인 귄터 그라스가 생각하는 이 사건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그 때의 다각화되지 않은 시각과, 우경화된 당시의 그들의 모습은 현재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있는 걸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빌헬름 구스틀로프호 침몰 사고 당시, 해당 역사상 가장 인명사고가 많았던 해상 사고에 대해서 전 세계적으로 그렇게 크게 조명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로는, 전후 유럽에서 소련은 공식적으로 '나치를 무너뜨린 해방자'라는 인식도 있었고, 독일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국이었지만, ‘홀로코스트를 일으킨 범죄 집단에게는 연민은 큰 사치다.’라는 입장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은 아이들의 부모들은 국제사회로부터 '나치부역자들 드디어 죗값을 치루는구나.', '하늘이 벌을 내린 것이다.'라는 등의 평가를 듣고는, 아이들의 부모들은 '나와 아이들은 태어나지 않았어야 한다.'라고 한 내용도 있다.
또한, 당시 소련 점령지역이었던 동 독일의 경우, 소련식 사회주의 질서가 이식되어가고 있었고, 동 독일은 자신들을 스스로 반(反) 파시스트 국가'로 규정한 바가 있었기 때문에 진성 나치 후계자인 서독을 비판하는 등, 동 독일은 "소련도 나쁜 놈이네."라는 인식은 다뤄질 수 없었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나치 & 소련 모두 단순히 인식이 좋지 않지만, 이런 경우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할 수 없거나, 침묵으로 일관해야 한다는 건 비극적이다. 그를 통해 느낀 점은, 우리의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나, 여러 가지 시각에서 한 가지 사건을 바라보지 않는 우리에게는 우경화된 미래를 접할 수밖에 없는 정당성이 있다는 것이다.
과거 홀로코스트 당시 수많은 폴란드 및 유대인들이 학살되었지만, 2025년 지금 세계적으로 제2의 나치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다. 결국, 사고의 단선화, 즉 다각화되지 않은 시각을 통해 보는 방식을 통해 과거의 가해자이거나, 가해자와 같은 집단이었던 사람은 당연히 비극을 입어도 된다는 식의 인민재판은 서로를 더욱 극단으로 치닫지 않을까.
요즘 특정 재판 결과는 대한민국 법원 웹 사이트에서 글로서 매우 상세하게 각자의 입장을 담아서 게재하곤 한다. 나의 사건이 글로 게재되어 만민에게 드러나게 되었을 때, 글만 읽은 대중이 당사자인 나보다 다채롭게 정황을 이해할 수는 있을까? 이전에 내가 쓴 사해동포주의에 대한 내용과 많이 맞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