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의 나는, 엄마의 젊은시절, 즉, 아빠와의 결혼 전 또는 우리 형제들이 모두 아기였던 시절, 사진 속 엄마(그 당시에는 모두 흑백 사진)를 보면 우리 엄마 같지 않아 당황스럽기도 하고 묘한 기분이 들곤 했었다.
시부모 모시면서, 왜케 자주오는 제사에, 여러 자식들을 낳고 기르며, 매 끼니마다 대식구의 반찬을 만들어 대령해야 했던 엄마였다. 간혹 끼니 때를 잊고 노느라 정신없는 우리들에게 악다구니를 마다하지 않았고, 부잡스런 막내 남동생이 넘어져 이마에서 뚝뚝 피를 흘릴 때는, 병원 없는 그 시골길을 제 정신 아닌 여인네 처럼 아이를 들쳐 업고 냅다 달려 약국도 아닌 약방문을 우악스럽게 두드리던 엄마였으니, 꽃처럼 예쁘고 연약하게 보이는 그리고 부끄러운 듯 살짝 미소지은 사진 속 여인이 엄마라는 생각은 상상 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제 나에게 우리 (친정) 엄마처럼, 나는, 내 자식에게 (그의) 엄마가 되었다. 나는 우리 아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였을까? 시부모를 모시면서 자식을 기르며 매 끼니마다 반찬 (만들기 싫어서) 투정 하는 엄마였을까? 간혹 게임하느라 정신없는 아들에게 악다구니를 쓰는 엄마? 아니면, 교통사고로 중환자실과 일반병실, 그리고 재활치료까지 1년 넘는 기간동안 종합병원 병상에 있던 애 아빠 병간호 때문에, 매번 떨어지기 싫어 목에 매달린 채 토하며 울던 어린 자식을 매정하게 뿌리쳐야 했던 처절한 엄마로만 기억(하는 것은 아니겠지?)한다면......
아들, 그것은 큰 오산이다.
엄마도 한때는 우아한 백조가 되고 싶었다. 적어도 내 아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만나는 최초의 여자가 아니던가?
< 현재 연필꽃이로 사용중인 내 퀼트 작품-백조 >
다소 도도하고 긴 목이 살짝 외로워 보이는 범접할 수 없는 품위를 지닌, 고져스하고 엘레강스하며 그레이스 한 뭐 그런 존재(로 너와의 만남을 시작하고 싶었지.)!
그러나 현실은 만만하지 않았다. 세상은 나에게 충실함을 요구했어. 며느리로, 마누라로, 엄마로, 그리고 직장인으로, 모두가 나에게 영리하고 주인을 잘 따르며 절대 그들을 배신하지 않는 존재이길 바랬지. 낮에는 꼬리를 흔들며 주인의 비유를 맞추어주고 밤에는 집을 잘 지켜야 한다고 주입했어. (아니, 주입 하는 것 같았어.) 주인이 편안하고 안심하도록 보호하고 적이 나타나면 바로 사납게 짖어야 하는 존재. 나는 사람이면 안 되는 존재였던 거야.
< 아들에게 만들어준 강아지 인형인데, 아들은 인형을 안 좋아했다.ㅜㅜ>
그러다가 나는 점점 웅녀가 되어갔지. 우리 민족(가족)의 시조가 된거야. 인내심 많고, 인간이 되기 위해 쑥과 마늘만 먹으라는 부당한 요구에도 불평하면 안되는 존재. 난 신화에 나오는 존재가 되어야 하니까! 몸매도 심성도 이제 완전 곰이 되어 두발로 걸어도 어째 네발로 걷는 것처럼 우둔해 보이고 겨울이 되면 겨울잠을 자야해서 더 뚱뚱해졌다. 그렇다면 내 아들이 단군이 되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존재가 되려나? 그러나 저러나,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누가 다 가져 간거야?
< 지금도 울집 거실 소파를 지키고 있는 곰 세마리 >
그리고 점차 나이든 엄마인 나는, 지인들이 복권을 사러 간다고 하면 혹시 지난 밤 꿈 속에서 나를 본게 아닌가 하고 살짝 당황하는 존재가 되었지. 젊은 시절에는 그렇게나 까다롭던 먹성이 이제는 물에 밥만 말아도 잘 먹고 웬만하면 성질도 잘 안부린다.(사실 기대도 별로 안해서 쉽게 포기한다.) 아무데서나 잘 자고 코까지 곤다(쿨쿨 꿀꿀~). 게으르고 의외로 애교도 잘 부린다.(자식에게만, 삼식씨에게는 여전히 호랑이다).
나는 이제 우리 집안의 복덩이 돼지가 되었다. 옛날 이발소에 걸려 있던, 10마리나 되는 새끼에게 젖을 물리는 복 돼지 그림처럼, 조만간 나도 우리집 벽에 걸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지 모른다.
< 돼지띠 해에 지인들에게 선물 한 복돼지 >
이제 4단계까지 변신한 이 몸이 다시 1단계로 돌아갈리 없고, 아무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심지어는 나 자신도!).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이상하리만큼, 내 엄마의 인생을 내가 살고 있는 것 같다. 나의 모든 것이 우리 엄마 덕분이었듯이, 나도 내 사랑하는 자식에게 이런 엄마가 될 수 있음이 감사하다. 백조도, 개도, 곰도, 돼지도 모두 소중한 존재의 의미가 있구나. 그래서, 모든이에게
엄마의 변신은 축복이 되었다!.
PS: 늙은 엄마들을 변신이 자유자재인 마녀, 또는 시대에 뒤떨어진 여성으로 볼까봐 살짝 겁이 난다. 여기서 글이 끝나면 서운할 이 세상의 (젊은)엄마들이여, 걱정 마시라, 그대들은 4단계까지 오지 않을 것이다. 아직 어린자식이 옆에 있다면, 저 넓은 바다로 함께 힘차게 헤엄쳐 가시라! 때로는 마주보며, 때로는 한 방향으로! (돌)고래처럼!
(드라마 속) 우영우가 사랑한 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