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11번, 정의 카드: 앞이 보이지 않다고 느끼는 당신에게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자동차 사고로 액땜을 하더니, 고관절 통증 때문에 의자에 앉아 있기도 힘들어 좋아하는 글쓰기와 책읽기를 서서 해야 할 정도 였는데, 급기야, 독감에 걸리고 말았다. (1월 한달이 이렇게 사건사고로 다 채워질 것 같아 두려웠다.) 며칠동안이나 목이 찢어질 듯 아프고 침과 물도 잘 못 삼키고 잠도 못 이룰만큼 아파서 병원을 바꾸어 가며 진료를 받았는데, 누군가 그랬다. '감기는 때가 되어야 낫는다고.'
3일간은 정신까지 몽롱 할 정도로 아파서 잠만 잤다. 그러다가 일어나 내다본 창밖 풍경은 ................
깜짝 놀랐다. 우리집은 뷰가 좋아서 으레껏 보였던, 먼산의 풍경, 다른 이웃 동들의 모습, 그리고 쭉 뻗은 도로와 달리는 차들이 하나도 안 보였다! 내가 아파서 이젠 정신줄까지 놓은 건가 순간 무서움에 닭살이 돋았었다.
눈을 비비고 자세히 보니 안개가........ 세상에 내 생전 처음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래쪽 위쪽 옆쪽, 건너편 쪽 모두 정말이지 하나도 안 보였다. 지금이 오전 10시 반, 지금도 이렇게 안개로 한치 앞이 안보이는데, 더 이른시간, 사람들은 이 안개를 뚫고 어찌 출근했을까? 괜한 걱정 하나 더하며 약을 먹기위해 무엇을 씹고 있는지도 느껴지지 않는 밥을 간신히 목에 넘기고 약을 먹었다.
바로 누울수는 없어, 잠시 소파에 앉아 멍하니 창밖 안개를 보다가 문득 예전에 읽었던 고전, '맥베스(Macbeth: 세익스피어 원작) '에서 마녀들이 등장하는 신(scene)이 떠올랐다. 이 장면은 맥베스의 야망과 내면의 혼란을 보여주는 아주 상징적인 중요한 장면인데 안개가 자욱했다. 안개란 거의 모든 문학 작품에서, 혼돈과 혼란, 착각, 현실과 환상의 경계 붕괴, 불길함, 진실의 차단, 미궁, 내면의 공포, 불안감 등을 상징하는, 주로 부정적 핵심 모티브로 사용된다. 맥베스의 안개도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이 구별되지 않는, 아니, 사라진 도덕적 타락에 가득찬 내면이나 세상을 보여주는 의미였다. 그래서 맥베스의 안개는 그의 도덕적 올바름을 상실한 비극 전체를 덮는 예고가 된 것이다. 그는 자신의 그릇된 선택과 잘못된 판단으로 피로 얼룩진 비극을 맞이했으며 그 비극의 시작이 칼이 아닌, 안개였다는 점이 인상깊은 작품이다.
안개가 자욱한 광야에 마녀들이 등장하여 맥베스가 장차 스코틀랜드의 왕이 될 것임을 예언하며,'선한것이 추악하고, 추악한 것이 선하다. 안개와 더러운 공기를 헤치고 날아가라.(Fair is foul, and foul is fair: Hover through the fog and filthy air.)'라는 말을 한다. (영어 fair는 공정하고 올바른, 선한 / foul은 추악하고 더러운, 반칙의 의미) 이것은 인간이 얼마나 악의 부추김에 미약한 존재인지, 인간이 얼마나 쉽게 욕망의 노예가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단초가 된다. 수수께끼 같은 말로 맥베스의 허영심과 욕망을 자극하는 마녀들의 존재는 실제로는 우리 인간이 가진 본원적인 욕망을 투사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욕망을 자극하는 달콤한 (마녀들의) 유혹을 물리치기 어려운 우리네 인간 심리를 보여주며,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악의 속성이 현실화 되는 과정과, 이 때문에 몰락하는 인간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심리학 책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안개 속에서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건물이 사라진것도 아니고 길이 없어진 것도 아니며 단지 잠시동안 보이지 않을 뿐이다. 맥베스는 훌륭한 장군이었으나 그 안에 있던 욕망과 불안감이 안개 속에서 방향을 잃고 자신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의 비극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내려진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왕이 될 수 있다는 유혹을 그의 불안감을 끝내 줄 정답처럼 여기며, 진실 여부를 판단하지도, 올바른 선택을 할 시간도 없이 조급하게 내려진 결정(던컨왕을 살해함)으로 그는 파멸했다.
안개 낀 도로에서는 차들이 빨리 달리지 않는다. 이 경우 빠름은 대개 방향을 상실하게 되고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개는 언젠가 걷히고 맑아지며 더 온화한 날씨를 선물로 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안개 속에서 필요한 것은 '잠시 멈추는 용기' 또는 '느리지만 확인하고 한 걸음씩 천천히 가는 것' 이다. 맥베스의 비극의 핵심은 그의 인생을 망친 욕망 자체가 아니라, 안개 속에서 내린 그의 섣부른 결정과 태도이다.
20대 후반의 공부중인 아들을 둔 엄마로서, 또한 폭풍같았던 나의 20대를 기억하는 한 인간으로서 지금을 사는 20대나 30대들을 바라본다. 어찌 보면 찬란한 젊음을 누릴 사이도 없이 20내나 혹은 30대들은 안개 낀 시간들을 지나가고 있는 중 인지 모른다. 실험을 밥 먹는 것보다 더 많이 하는 아들이 '앞이 안보여요, 막막해요' 라며 의도한 대로 실험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마다 하는 소리를 들어보아도 분명 내 아이도 안개 속을 헤매이는 시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일수록 나는 아들보다 더 가슴이 먹먹해도 아무렇지 않은 척 '네 실험이 모두 네 계획과 예상대로 나왔다면, 이 세상에 병든자 하나도 없게?' '숙명이라고 받아 들이고 그럴 때 일수록 잠시 앉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밖에는 해 줄말이 없다.
안개가 우리 시야를 가리면 상황을 정확하게 볼 수 없으므로, 멀리 볼 필요도 없이 지금 현재 느리지만 내가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남들은 다 잘 나가는 것 같은데 나만 제자리에 서 있는 기분이 들 때 우리는 더 서둘러 가려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그러므로 지금 자신의 (한치) 앞이 안 보인다고 생각한다면 서두르지 말고 기본부터, 기준부터 바로 세우는 기회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최소한 오늘의 내 선택이 내일의 나에게 부끄럽지는 않을 테니까.
< 유니버셜웨이트 메이저, 11번 정의 카드: 한손에는 검을, 다른손에는 저울을 들고 결단과 공정한 판단을 강조한다. >
정의 카드는 안개 속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말한다.
'불필요한 감정과 욕망, 불안이 만든 상상, 타인과 비교하며 생긴 열등감이라는 안개를 잘라내!'
그리고 안개 속에서는 균형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선택이 과연 정의로운지, 나의 삐뚤어진 욕심은 아닌지 (양심의) 저울로 정확하게 재야 한다!'
또한 조용히 속삭인다.
'과정의 정직함. 남과 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 맑음을 유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