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_ X의 화딱지

제4장: 이마 위에 붙인 마음, ㄹ의 비밀

by 박중근

사무실 공기는 여전히 팽팽했다. 예인 씨는 민후의 지시대로 수첩을 들고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펜 끝은 단 한 번도 종이에 닿지 않았다. 그것은 무언의 시위였다.


민후는 그 광경을 보며 가슴 속에서 화딱지가 끓어올랐지만, 그때마다 미로가 말한 ‘코이의 어항’을 떠올리며 간신히 참아냈다.


점심시간 직후, 복도에서 마 팀장의 날 선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야!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내가 아까 분명히 A라고 했지, 누가 네 마음대로 B로 하래! 내 지시가 그렇게 어려워? 너 머리는 장식이야?”


마 팀장에게 불려 나간 신입 사원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마 팀장은 제 분에 못 이겨 씩씩거리며 민후에게 다가왔다.


“강 팀장, 봤지? 요즘 애들은 ‘공감 능력’이 제로야.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껏 알아차려야 할 거 아냐. 리더 마음 하나 못 읽으면서 무슨 일을 하겠다고.”


민후는 마 팀장의 말을 들으며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공감’이라... 과연 마 팀장이 말하는 공감과 자신이 생각하는 공감이 같은 것일까? 그날 오후, 민후는 팀원들을 회의실로 불러 모았다. 손에는 노란색 포스트잇 한 뭉치가 들려 있었다.


“오늘은 특별한 실험을 하나 해보겠습니다. 여기 포스트잇을 이마에 붙여 보세요. 그리고 한글 자음 ‘ㄹ’을 적어 보세요.”


팀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포스트잇을 붙이고 ㄹ을 썼다. 민후도 자신의 이마에 ‘ㄹ’을 썼다. 그리고 잠시 후, 민후는 팀원들의 이마를 하나씩 확인하며 충격에 빠졌다.


예인 씨를 포함한 MZ 세대 팀원들은 모두 글자를 ‘똑바로’ 썼다. 즉, 마주 보는 민후가 읽기에 편한 방향으로 ‘ㄹ’을 적은 것이다. 하지만 민후 본인과 옆에 앉은 최고참 박 차장의 이마에는 글자가 ‘거꾸로’ 적혀 있었다. 자신이 쓰는 방향 그대로, 즉 남들이 보기엔 뒤집힌 모양으로 쓴 것이었다.


사실 이 실험은 캘로그 경영대에서 2006년에 했던 공감력 테스트였다. 알파벳 E테스트였는데 리더그룹과 직원그룹으로 나눠 이마에 E를 쓰게 한 것이다. 결과는 무척 놀라웠다. 리더그룹은 33%가 E를 거꾸로 적었고 직원그룹은 12%만이 E를 거꾸로 적은 것이다. 이 차이는 어디서 나왔을까? 이 실험의 목적은 권력을 잡을수록 상대방의 입장보다 내 생각이 앞선다는, 즉 공감력이 점점 떨어진다는 뇌 과학자들의 실험 결과를 공개적으로 실험 적용해 본 예이다.


내가 이끄는 팀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오다니.. 속에서 생기는 당혹감과 불편함을 애써 감추며 말을 이었다.


“여러분, 보이시나요? 제가 쓴 ‘ㄹ’은 여러분이 보기에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냥 큰 생각없이 ㄹ을 적었거든요. 그런데 예인 씨가 쓴 ‘ㄹ’은 제가 읽기에 아주 편합니다. 예인 씨는 글자를 쓸 때, 이미 제 시선에서 이 글자가 어떻게 보일지를 고민했다는 뜻입니다.”


회의실에 정적이 흘렀다. 민후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그동안 제가 생각한 공감은 마 팀장님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내 마음을 왜 몰라주냐’고 서운해하기만 했지, 정작 여러분의 이마에 제가 읽기 편한 글자를 써주려고 노력한 적이 없더군요. 제 방식만 고집하며 ‘ㄹ’을 거꾸로 쓰고 있었던 건 바로 저였습니다.”


예인 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늘 방어적이었던 그녀의 어깨에서 미세하게 힘이 빠지는 것이 보였다.


퇴근 후, 미로는 거실 바닥에 떨어진 노란 포스트잇을 앞발로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강 팀장, 오늘 ‘ㄹ’ 실험 꽤 인상적이었어. 리더들이 흔히 착각하는 게 뭔지 알아? 공감이 ‘상대방이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라고 믿는 거야. 아니, 공감은 ‘내가 내 자리에서 일어나 상대방의 의자에 앉아보는 것’부터 시작이거든.”


“맞아, 미로야. 마 팀장은 자기 의자에 앉아서 팀원들에게 잘 하라고 소리치고 있었던 거지. 나 역시 내가 만든 성공이라는 의자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고.”


“리더의 이마에 적힌 글자가 팀원들에게 거꾸로 보인다면, 그건 소통이 아니라 그냥 소음일 뿐이야. 팀장님이 오늘 글자를 제대로 돌려 쓰기로 마음먹은 순간, 예인 씨의 마음속 어항도 조금은 넓어졌을걸?”


미로는 포스트잇 위에 배를 깔고 누우며 덧붙였다.


“근데 강 팀장, 글자만 바로 쓴다고 다가 아냐. 상대방이 왜 그 자리에 앉아 있는지, 그 ‘맥락’을 이해 못 하면 결국 다시 거꾸로 쓰게 될걸? 내일은 예인 씨의 ‘궤도’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한번 살펴봐.”


민후는 수첩을 펴서 거꾸로 썼던 ‘ㄹ’을 지우고, 팀원들이 읽기 편한 방향으로 정갈하게 ‘ㄹ’을 다시 적었다. 리더의 공감은 마음을 읽는 독심술이 아니라, 시선을 돌리는 기술이었다.



� 미로의 한마디: "리더의 이마에 적힌 글자가 팀원들에게 거꾸로 보인다면, 그건 소통이 아니라 소음일 뿐이야. 상대가 바로 읽을 수 있게 마음의 방향을 트는 것, 그것이 진짜 어른의 리더십이지.“



지난 4년간 다양한 조직에 'ㄹ'쓰기를 실험한 결과

켈로그 경영대의 결과와 유사한 패턴을 발견했다.

직급이 높을 수록 'ㄹ'을 거구로 적는 비율이 높다는 사실.


대표적으로 맨손으로 사업을 일으킨 중견, 중소 기업의 리더들을 대상으로 실험해 보면 참석자의 평균60%정도가 거꾸로 적었다. 그 외의 리더 그룹도 40% 이상의 참석자들이 같은 패턴을 보였다.


상대의 생각,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내가 생각하는 데로 지시하는 것이 일상이 되다면 조직의 행복도는 떨어진다. 전체의 행복을 고려하는 리더십이 펼쳐진다면 어떨까? 자, 포스트잇 한장과, 공감력으로 관계를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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