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말할 수 있는 용기, 들을 수 있는 여유
금요일 오후, 본부 전략 회의실 문틈으로 마 팀장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브레인스토밍 회의라고 소집했지만, 실상은 마 팀장의 ‘단독 콘서트’였다.
“자,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 아이디어 있는 사람? 자유롭게 말해봐. 아, 그런데 내 생각은 말이야…”
마 팀장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신의 안을 칠판에 빼곡히 적어 내려갔다. 팀원들이 입을 떼려 하면 여지없이 말을 끊었다.
“그건 예전에 해봤는데 안 됐어”, “현실성이 없잖아”, “너 뇌는 너희집 서랍에 두고왔어?”.
결국 회의는 마 팀장의 결론에 고개를 끄덕이는 ‘예스맨’들의 합창으로 끝났다. 회의실을 나오는 팀원들의 표정은 질린 듯 어두웠고, 손에는 이미 결정된 마 팀장의 지시사항만 들려 있었다.
민후는 그 풍경을 보며 구글의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 자료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성공하는 팀의 제1조건은 똑똑한 팀장 팀원이 아니라, 어떤 말을 해도 비난받지 않는다는 ‘심리적 안전감’이었다. 민후는 팀원들을 작은 회의실로 불렀다. 그리고 화이트보드 상단에 큼지막하게 ‘I speak last’라고 적었다.
“오늘 회의 규칙입니다. 가장 직급이 낮은 예인 씨부터 의견을 내주세요. 저는 여러분의 말을 중간에 끊지 않고 가장 마지막에 제 생각을 말하겠습니다. 어떤 엉뚱한 아이디어라도 좋습니다. 오늘은 ‘정답’을 찾는 날이 아니라 ‘생각’을 모으는 날이니까요.”.
정적이 흘렀다. 팀원들은 눈치를 보며 민후의 입술을 살폈다. 리더가 침묵하자 공기는 낯설게 변했다. 하지만 어색한 몇 분이 흐른뒤, 예인 씨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팀장님… 사실 아까 마 팀장님 회의 때 하고 싶었던 말인데요. 요즘 타겟들은 텍스트보다 3초짜리 숏폼의 ‘소리’에 먼저 반응하거든요. 우리도 비주얼보다는 ‘사운드’ 중심의 챌린지를 해보면 어떨까요?”.
예인 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른 팀원들이 살을 붙이기 시작했다. “어? 그럼 작년에 마 팀장님이 실패했다는 그 방식이랑은 완전히 결이 다르네요!”,
“맞아요, 사운드를 브랜드화하면 훨씬 강력할 것 같아요!”.
민후는 입술이 근질거렸다. “그건 예산이 많이 들지 않을까?” 혹은 “실행 방법이 너무 복잡한데?”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는 자신의 수첩을 꽉 쥐며 참아냈다. 리더가 권위의 칼을 칼집 깊숙이 넣어두자, 팀원들은 비로소 창의라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퇴근 후, 거실 소파 밑에 숨어 있던 미로가 고개를 쓱 내밀었다.
“강 팀장, 오늘 입술 참느라 고생 많았어. 마 팀장처럼 첫마디를 떼는 순간, 회의는 ‘답정너’ 쇼가 된다는 걸 오늘 확실히 봤지?”.
“미로야, 마지막에 말하는 게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 몰랐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쏟아내고 싶은 유혹이 정말 강하더라고.”.
“그게 리더의 자존감 문제야. 내가 제일 잘 안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마음. 하지만 진짜 고수는 팀원들이 스스로 무대를 만들게 두고 마지막에 박수쳐 주는 사람이야. 리더가 침묵할 때 팀원의 심리적 안전감은 자라나고, 그 안전함 속에서만 진짜 혁신이 태어나는 법이지.”.
미로는 민후의 발가락을 툭 치며 덧붙였다.
“근데 강 팀장, 리더가 팀원들을 안전하게 지켜주려면 리더 본인의 에너지도 꽉 차 있어야 해. 맨날 참기만 하다가 마음속 화딱지가 폭발하면 어떡해? 내일은 강 팀장 자신을 위한 ‘이타적 휴식’을 한번 가져보는 게 어때?”.
민후는 수첩에 적었다. ‘리더의 침묵은 팀원의 용기를 키우는 가장 비옥한 토양이다.’. 회의실 칠판에 적힌 ‘Speak Last’는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민후의 깊은 예의였다.
� 미로의 한마디: "팀장이 첫마디를 떼는 순간, 회의는 '답정너' 쇼가 돼. 마지막까지 참는 게 진짜 실력이야. 리더가 거울이 되어줄 때 팀원들은 비로소 창문을 열고 밖을 본다는 걸 잊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