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정답을 지우고 질문을 채우다
목요일 오후, 마케팅 본부의 공기는 평소보다 무거웠다. 마 팀장이 팀원들을 한 줄로 세워놓고 서류 뭉치를 흔들며 독설을 퍼붓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 내가 이거 규모 줄이라고 했어, 안 했어? 너희는 생각이 없어?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내 답이 정답이니까 토 달지 말고 고쳐 와!”.
마 팀장에게 팀원은 자신의 손발에 불과했다. 그는 정답을 미리 정해두고 팀원들이 그 틀에 맞추지 못하면 ‘머리는 장식’이라며 깎아내렸다. 그의 팀원들은 이제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잊은 채, 마 팀장의 입 모양만 살피는 꼭두각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민후는 그 광경을 보며 예인 씨의 책상으로 향했다. 예인 씨 역시 예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팀장님, 이번 캠페인 예산이 너무 타이트해요. 인플루언서 협찬 비용을 줄여야 할까요? 아니면 영상 퀄리티를 낮춰야 할까요? 팀장님이 좀 결정해 주세요.”.
민후의 입술이 움찔거렸다. 15년 차 리더로서 민후의 머릿속에는 이미 ‘예산을 20% 삭감하고 SNS 채널을 일원화하라’는 명확한 답이 나와 있었다. 하지만 민후는 마 팀장처럼 정답을 내던지는 대신, 미로가 강조했던 ‘질문의 힘’을 떠올렸다.
“예인 씨, 제가 답을 내리는 건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의 주인은 예인 씨잖아요. 만약 우리가 예산을 줄이지 않고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제3의 길’이 있다면, 예인 씨는 무엇부터 시도해보고 싶어요?”.
예인 씨는 당황한 듯 눈을 깜빡였다. 늘 정답만 받아먹던 습관이 그녀의 사고를 멈추게 했던 것이다.
민후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언젠가 지하철역에서 봤던 문구가 생각이 났다.
독재자가 지배하는 나라는 독재자의 역량을 벗어날 수 없다. 어느 역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지금도 잊히지 않는 걸 보면 공감이 크게 되었던 모양이다.
5분 같은 1분이 흐른 뒤, 예인 씨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음, 생각해보니 인플루언서들에게 현금 대신 우리 제품의 장기 구독권을 제공하고 공동 구매 형태로 진행하면 어떨까요? 그럼 마케팅 예산은 아끼면서 매출은 바로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아요.”.
민후는 속으로 무릎을 쳤다. 자신의 정답보다 훨씬 신선하고 실행력 있는 아이디어였다. 예인 씨는 자신이 직접 찾아낸 답을 설명하며 어느 때보다 활기차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직접 고민하고 조립한 결과물에 더 큰 애착을 갖는 ‘이케아 효과(IKEA Effect)’가 발동한 것이다.
퇴근 후, 거실에서 장난감을 물어뜯던 미로가 민후를 빤히 바라보았다.
“강 팀장, 오늘 ‘정답 도둑질’ 안 하고 잘 참았네? 마 팀장처럼 답을 다 가르쳐주면 팀원들 뇌는 퇴화해서 결국 깡통이 되고 말거든.”.
“미로야, 사실 답을 알고 있는데 안 가르쳐주는 게 제일 힘들더라. 예인 씨가 끙끙 앓는 걸 보고 있으면 내가 그냥 해버리고 싶어지거든.”.
“그게 바로 리더의 인내심이야. 강팀장이 정답을 줄수록 예인 씨의 성장은 멈춰. 질문이라는 영양제를 줘야 그들의 생각이 근육처럼 단단해지는 거야. 직접 조립한 가구가 더 소중하듯, 직접 찾은 정답이라야 예인 씨가 끝까지 책임지고 해내지 않겠어?”.
미로는 민후의 무릎 위로 뛰어올라 덧붙였다.
“근데 강 팀장, 질문만 한다고 다가 아냐. 팀원들이 자유롭게 대답할 수 있는 ‘안전한 무대’가 필요해. 내일은 팀원들이 비난받을 걱정 없이 마음껏 떠들 수 있는 ‘심리적 안전감’을 한번 깔아줘 봐. 리더가 마지막에 말하는 게 포인트야!”.
민후는 수첩에 적힌 예인 씨의 아이디어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리더의 진짜 실력은 정답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팀원이 스스로 정답을 찾게 만드는 질문을 던지는 데 있었다.
� 미로의 한마디: "팀장이 정답을 줄수록 팀원들의 뇌는 퇴화해. 질문이라는 영양제를 줘야 그들의 생각이 쑥쑥 자란다고. 직접 조립한 생각이 진짜 실력이 된다는 '이케아 효과'를 믿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