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사람이 바뀌냐고 묻는 이들에게
다음 날 아침, 사무실의 공기는 평소보다 무겁고 눅진했다.
민후가 자리에 앉자마자 팀원들은 일제히 시선을 피했다. 다들 간밤의 블라인드 게시글이 민후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을지, 혹은 그가 어떤 '보복'을 가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옆 팀 마 팀장은 신이 난 듯 커피 잔을 들고 다가와 민후의 책상을 툭툭 쳤다.
“강 팀장, 봤지? 내가 뭐랬어. 잘해줄 필요 없다니까. 자, 이제 범인 잡아야지? IT팀에 협조 요청해서 작성자 추적해. 이번 기회에 본때를 보여줘야 애들이 기어오르지 않지. 나 같으면 오늘 당장 팀 전체 면담 돌려서 자백받아 낸다.”.
민후는 마 팀장의 말을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팀원들의 시선이 민후의 등에 꽂혔다.
민후가 적은 문장은 뜻밖에도 어젯밤 블라인드에 올라온 비난의 제목이었다.
[폭로] 우리 팀 팀장님, 사실은 답정너 끝판왕 아님?
팀원들 사이에서 짧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민후는 천천히 몸을 돌려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어젯밤 이 글을 보고 한잠도 자지 못했습니다. 처음엔 억울했고, 그다음엔 배신감이 들더군요. ‘내가 어떻게 저들을 위해 노력했는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민후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하지만 새벽녘에 제 수첩을 다시 읽어보며 깨달았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말을 끝까지 듣는 척했지만, 사실 제 머릿속으로는 이미 결론을 내리고 여러분을 그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었습니다. ‘답정너’라는 지적은 정확했습니다. 제 변화가 서툴렀고, 제 진심이 권위라는 갑옷에 가로막혀 가식처럼 보였던 겁니다.”.
민후는 고개를 숙여 팀원들에게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저도 리더가 처음이라,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이 앞섰습니다. 앞으로 제가 다시 답을 정해놓고 여러분을 몰아세운다면, 언제든 이 블라인드 글처럼 제게 직언해 주세요. 저도 여러분과 함께 바뀌고 싶습니다. 도와주세요.”.
정적이 흘렀다.
마 팀장은 뒤에서 “세상에, 팀장이 자존심도 없나?”라며 혀를 찼지만, 예인 씨를 포함한 팀원들의 눈빛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리더가 자신의 ‘취약함’을 인정하고 손을 내미는 순간, 1982년 타이레놀 사건 당시 존슨앤존슨이 피해를 감수하고 정직하게 고백하며 신뢰를 회복했던 것처럼, 팀의 마음속에 견고한 신뢰의 성벽이 쌓이기 시작했다.
퇴근 후, 거실에서 꼬리를 흔들던 미로가 민후의 무릎 위로 뛰어올랐다.
“강 팀장, 오늘 진짜 어른 같았어. 마 팀장은 자기 상처를 감추려고 독설을 뱉지만, 너는 상처를 드러내서 팀원들의 마음을 치유했잖아.”.
“미로야, 사실 죽고 싶을 만큼 창피했어. 그런데 고백하고 나니까 이상하게 마음이 가볍더라. 갑옷이 너무 무거웠나 봐.”.
“완벽한 척하는 상사보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같이 가자고 말하는 상사가 훨씬 섹시한 법이야. 사람이 바뀌냐고 묻는 이들에게 너는 오늘 행동으로 대답했어. 리더의 진짜 권위는 지위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용기에서 나온다는 걸 말이야.”.
미로는 민후의 손등을 핥으며 덧붙였다. “이제 진짜 마지막 고지가 보여. 강팀장이 없어도 더 잘 돌아가는 팀, 그 ‘곱하기의 마법’을 보여줄 차례야.”.
민후는 수첩에 적었다. ‘정직은 리더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리더가 낮아질 때 팀은 비로소 높아진다.’.
� 미로의 한마디: "완벽한 척하는 상사보다 부족함을 인정하는 상사가 훨씬 섹시해. 그게 진짜 어른의 리더십이지. 제가 오늘 던진 고백이 팀원들에게는 가장 강력한 '심리적 안전감'의 씨앗이 되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