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장: 내가 사라져도 돌아가는 팀, 곱하기의 마법
연말 본부 통합 성과 발표회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발표는 차기 임원 후보를 결정짓는 중요한 자리였기에 사무실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옆 팀 마 팀장은 며칠째 예인 씨의 동기인 김 대리를 옆에 끼고 앉아 있었다.
“야, 김 대리! 내가 어제 준 자료 다 넣었어? 그 로직은 내가 짠 걸로 강조하라고 했지? 네 이름은 맨 뒤에 작게 넣어. 어차피 본부장님은 내 실력을 보시는 거니까.”.
마 팀장은 팀원들의 고혈을 짜내어 자신의 왕관을 만드는 ‘디미니셔(Diminisher, 축소형 리더)’의 전형이었다.
그는 팀원들의 유능함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까 두려워했고, 모든 성과의 마침표는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찍어야 직성이 풀렸다.
김 대리의 눈빛은 이미 초점을 잃은 채 기계적으로 슬라이드를 수정하고 있었다.
민후 역시 발표 자료를 준비하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내가 직접 발표해서 임원들에게 제 변화를 증명해야 할까?’. 하지만 그 밤, 미로가 민후의 노트북 화면을 앞발로 가렸다.
“강 팀장, 아직도 네 실력을 증명하고 싶어? 진짜 유능한 리더는 자기가 빛나는 사람이 아니라, 팀원들을 발광체로 만드는 사람이야. ‘곱하기형 리더(Multiplier)’가 되어보라고.”.
“하지만 미로야, 이번 발표는 제 인사고과에도 결정적인데… 예인 씨가 실수라도 하면 어떡해?”.
“예인 씨를 믿어봐. 강팀장이 그동안 예인 씨의 궤도를 맞추고, 실패를 허용하고, 질문을 던졌던 모든 시간이 이번 발표에 녹아 있어. 팀장이 마이크를 잡으면 1 더하기 1은 2가 되지만, 예인 씨를 무대에 세우면 그건 무한대의 ‘곱하기’가 될 거야.”.
발표 당일, 민후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본부장님 앞에서 입을 뗐다.
“오늘 우리 팀의 성과는 현장에서 가장 치열하게 고민한 예인 씨가 직접 발표하겠습니다. 예인 씨가 우리 팀의 ‘진짜 엔진’이니까요.”.
마 팀장은 뒤에서 혀를 찼다.
“미쳤군, 강 팀장. 들어온 복을 지 발로 차버리네.”.
하지만 예인 씨가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잡는 순간, 회의실의 공기가 바뀌었다. 그녀는 민후가 정해준 정답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부딪히며 깨달은 데이터와 통찰을 쏟아냈다.
민후는 무대 아래 어두운 곳에서 흐뭇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발표가 끝나자 본부장님을 포함한 임원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강 팀장, 팀원을 저 정도로 키워내다니.. 정말 놀랍군. 리더가 없어도 돌아가는 팀, 그게 진짜 강한 팀이지.”.
퇴근길, 예인 씨가 민후에게 다가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팀장님, 오늘 저를 믿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제가 주인공이 된 것 같아 너무 벅찼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민후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거실에서 기다리던 미로가 꼬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거봐, 강 팀장. 네가 사라져도 팀이 더 잘 돌아가는 거 보니까 기분이 어때? 마 팀장은 자기가 없으면 팀이 망할까 봐 전전긍긍하지만, 너는 이제 자유로워진 거야. 팀원들의 가능성을 곱절로 키워준 진짜 리더가 된 거지.”.
민후는 수첩에 적었다.
‘리더의 유능함은 자신의 실력이 아니라, 팀원의 실력으로 증명된다. 리더가 작아질 때 팀의 에너지는 증폭된다.’.
마 팀장의 왕관은 녹슬어가고 있었지만, 민후가 예인 씨에게 건넨 무대는 영원히 빛날 준비를 마쳤다.
� 미로의 한마디: "팀장이 없어서 팀이 안 돌아간다면 그건 리더십의 실패야. 팀장이 없어도 더 잘 돌아가는 팀, 팀원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멀티플라이어'의 마법이야말로 강팀장이 남길 수 있는 가장 큰 업적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