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장: 남겨진 자리의 풍경, 그리고 영원한 DNA
인사 개편안이 발표되던 날, 사무실의 풍경은 극명하게 갈렸다.
옆 팀 마 팀장의 자리는 이른 아침부터 어수선했다. 계속되는 팀원들의 이탈과 블라인드 폭로, 결정적으로 성과 가로채기가 본부 감사에서 드러나며 그는 결국 보직 해임 통보를 받았다.
마 팀장은 텅 빈 상자에 짐을 챙기며 마지막까지 독설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이 회사를 위해 바친 시간이 얼마인데! 요즘 애들이 영악해서 나를 몰아낸 거야. 강 팀장, 너도 조심해. 그렇게 오냐오냐 해주면 나중에 뒤통수 크게 맞을 테니까.”.
그는 끝내 자신의 원형탈모가 리더십의 훈장이 아니라, 불통의 상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 채 고독하게 사무실을 떠났다.
민후 역시 팀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새로운 혁신 TF팀의 수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하지만 민후의 짐은 마 팀장의 것과는 사뭇 달랐다. 고민과 성장의 일기로 가득찬 낡은 수첩 하나로 단촐했다
민후가 짐을 챙겨 일어서자, 예인 씨와 팀원들이 그를 가로막았다.
“팀장님, 가시기 전에 이것만은 꼭 보셔야 해요.”.
예인 씨가 화이트보드에 큰 글씨로 '우리 팀의 DNA'라고 적었다. 그 밑에는 지난 몇 달간 민후가 강조했던 가치들이 팀원들의 손글씨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D (Diversity): 모두를 최대하고 다양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팀.
I (Inclusion): 모두가 파티의 주인공이 되어 함께 춤추는 팀.
E (Equity): 성장의 기회와 보상이 공정하게 흐르는 팀.
T (Transparency): 리더의 생각과 데이터가 투명하게 공유되는 팀.
“팀장님이 가셔도 저희는 이 방식대로 계속 일할 거예요. 팀장님이 우리에게 남겨주신 건 단순한 업무 지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함께 성장해야 하는지에 대한 유전자(DNA)니까요.”.
예인 씨의 말에 민후는 목이 메어왔다. 리더가 남길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유산은 화려한 실적 수치가 아니라, 자신이 떠난 뒤에도 숨 쉬며 작동하는 ‘문화’라는 사실을 그는 비로소 실감했다.
집으로 돌아온 민후를 맞이한 건 평소처럼 꼬리를 흔드는 미로였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민후가 미로를 안아 올리자, 미로는 그저 따뜻한 체온을 나누며 민후의 뺨을 핥을 뿐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민후는 깨달았다. 미로가 말을 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간절한 변화의 의지가 미로의 눈빛을 통해 스스로에게 답을 건넸던 것임을 말이다.
이제 민후에게는 더 이상 '말하는 강아지'가 필요 없었다. 그의 마음속엔 이미 리더십의 확신이 단단하게 뿌리 내렸기 때문이다.
민후는 수첩의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 그리고 사진 속 진정한 부장님의 미소를 보며 정갈하게 마지막 문장을 적었다.
<리더십은 결국 사람을 향한 예의다. 자신이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숫자가 아니라, 리더 덕분에 인생의 궤도를 찾은 사람들의 눈빛이다>.
민후는 수첩을 덮었다. 창밖으로 지는 노을이 유난히 따뜻했다. 화딱지로 가득 찼던 그의 리더십 여정은 이제 사람을 향한 예의와 존중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시작되고 있었다.
� 미로의 한마디 (최종): "강 팀장, 이제 너만의 진짜 춤을 춰봐. 리더십은 완벽해지는 과정이 아니라, 조금씩 더 따뜻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야. 네가 남긴 DNA가 예인 씨를 통해 또 다른 숲을 이룰 테니까. 고생 많았어, 나의 진짜 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