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통하는 거리

by 주댕맘

아이가 다시 복통을 호소했다.


최근 3개월간 반복적으로 일어난 복통이 기능성인지, 심리성인지 알 수 없던 까닭에, 즉 분명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터라 답답했다. 아이가 아프다고 하는 순간, 모든 게 멈춘다. 학교도 학원도 내 시간도. 아이를 치료하기 위해 소아과로 동분서주하고 수액을 맞추고, 약을 먹이고 하며, 일련의 멈춰진, 혹은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들을 인내해야 한다.


응급실에 도착했다. 혈액검사, 엑스레이, 소변검사, 복부 초음파까지 했는데도 이렇다 할 이상 원인 소견이 없었다. 2주 뒤 외래를 잡고 대변검사 할 도구들을 들고 병원을 나서는데 4시간의 시간에 둘 다 지쳐 버렸다. 아이에게 퉁명해진 말투로 말하자, 아이가 자신이 아픈데 왜 화를 내냐고 묻는다. 그래서,


니가 아프다고 해서 엄마가 힘들지 않은 건 아니야. 그렇다고 엄마가 이 상황이 힘들어서 너를 탓하는 건 아니야. 그냥 엄마가 좀 쉼이 필요해.


그랬더니 아이도 이해한다. 본인도 아픈데, 내가 언짢은 것 같으니 속상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내가 힘들었던 게 사라지는 건 아니니. 오랜 기간 원인이 모호해서 더 힘들다고 이야기하자 해줬던 의사의 말을 떠올린다.


어머님,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게 더 다행일 수 있어요. 원인이 명확해 진다는건 그건 심각하다는 의미이고, 그 병을 겪는다는 건 평생에 걸친 치료가 될 수 있거든요.


모호해진다는 것. 그게 오히려 나은 것이라는 것. 어쩌면 지금 아이가 겪는 복통의 원인이 아주 심각하지 않지만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이, 양육을 하며 겪는 온갖 불안의 모호한 원인들과 맞닿아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와 아이에게 죽을 먹이고, 잠시 숨을 고르러 산책을 나갔다.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양육의 어려움과 아이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엄마가 한 말 중 이 말이 가슴이 박혔다.


조금 가볍게 넘겨도 돼.

아이 증상의 원인이 심각한게 아니란 게 밝혀졌다면, 조금 더 대범해 져도 된다. 아이가 조금 아프다는 것에 동동 거리지 말고, 조금씩 불편함에도 익숙해져보고 나아가게 좀 거리를 둬도 괜찮다.


돌아가 아이에게 말했다.


이제 고학년인 너를 엄마가 다 일일이 케어해 주기 보다 너를 믿고 맡기려고 해. 우선 다른 침대지만 같은 방에서 자던 것을 분리하고, 숙제 계획도 니가 해보자. 그렇게 조금씩 홀로 서는 법을 배우고, 힘든 감정도 견뎌보는 연습을 해보자.


지친 날이었지만, 아이는 엄마가 멀어지는 것 같다며 크게 한번 울고 나서는 제 방으로 순순히 돌아갔다. 보조등을 켜주고, 잘자라고 꼭 안아주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홀가분한 마음 반, 아쉬운 마음 반이었다. 마구마구 귀여워해주고 싶었던 건, 옆에 끼고 모든 비바람을 막아주려고 애쓰고 싶었던 건 나였구나, 싶었다.


바람이 통할 거리. 두 발짝 떨어져 성장을 지켜볼 거리를 지켜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