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도 그래요.
얼굴을 가린 채 올라오는 채팅들. 같은 문제로 고민인 부모들이 모인 한 줌 강연이다. 내 일로 줌미팅을 할 때도 물론 얼굴을 가린 채 참여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얼굴을 가린 채 들어와 문자로만 이야기하는 형식이, 오로지 강연자만 말로 대답하는 형식이 신기했다. 강연자 또한 오랜 시간 그리 해왔는지, 자연스럽게 채팅창으로 답해주세요, 로 질문을 던졌고, 올라온 것들을 읽어가며 소통했다.
새로운 사람들이 모였지만, 내 얼굴이 곧 밝히고 싶지 않은 아이의 사적 정보가 될 수 있기에 가릴 수밖에 없는 상황. 그게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채팅만으로도 충분히 상호작용하고 공감하고 있었다. 강연자가 이미 아이와 시도해 본 모든 방법들이, 내가 몇 년간 내 아이와 해보며 깨달은 것과 맞닿아 있었을 때 다행이다 싶었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미리 강연자의 경험을 통해 그려볼 수 있어 안심이기도 했다.
더 이상 혼자 고군분투하지 않아도 된다는, 나 말고도 같은 일을 겪어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만다는 사실에 위로가 됐다.
삶에는 페이스메이커들이 필요하다. 일의 순간에도, 양육의 순간에도. 나 혼자 고립된 것만 같은 때, 나만 이 일을 겪는 것 같을 때, 무너질 수 있다. 혹여나 홀로 나름의 해결책을 찾아 잘 가고 있더라도 지속 가능성이 떨어진다.
기술이 발전해서 좋은 점은 나를 완전히 드러내지 않고도 보이지 않는 공감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완전히 가깝지 않은 타인에게 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마치 택시기사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승객들처럼. 같은 문제를 겪지 않는 아주 가까운 사이의 조언보다,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적정한 거리가 담보된 커뮤니티 안에서의 잔잔한 응원과 위로가 때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