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다

by 주댕맘

(영화 스포주의)


왕과 사는 남자를 제작한 장항준 감독에 빠져 그의 영상을 오랜 시간 지켜보자, 알고리즘이 그에 관한 모든 영상들을 내게 가져다 준다. 약속이 취소된 일요일 오전, 아이와 숙제하기로 했는데 그건 싫고, 밖에 나가기엔 춥고, 뭔가 볼만한 게 없을까 싶기도 한 찰나, 장항준 감독이 영화 하나를 추천한다. 영화감독인 그가 딸 아이와 봤다는 영화, 우연히 보고 아내 김은희 작가에게 보여주자, 그녀가 일주일 동안 내리 일곱 번을 봤다는 그 영화.


아무런 의심없이 영화를 켰다. 유튜브로 1200원을 결제하고 안방 커튼을 모두 닫고, 아이는 숙제 대신 영화를 보게 됐다며 과자 두 봉지를 기쁘게 들고 침대 위에 몸을 뉘였다. 아이가 보지 말아야 할 조금 부적절한(?) 장면들은 건너뛰며 보는데, 시간이 갈수록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었다. 우리가 옹기종기 모여있자, 어느새 남편도 은근슬쩍 침대 끄트머리에 앉는다. 재밌으면 더 보고, 아니면 나갈 심산으로. 괜히 남편이 오자 마음이 떨렸다. 평소 스펙타클한 영화를 선호하는 그가 재미없다고 나가도 괜찮은데, 그게 내 감상에 영향을 미칠까봐.


코다(Children of Deaf Adults, CODA)인 루비는 어부인 아버지와 오빠를 도와 매일 새벽 세 시에 고기잡이를 함께한다. 해경에서 오는 무선과 그날 잡은 물고기 판매를 위한 의사소통을 대신 하기 위해. 고등학생인 그녀는 이후 학교에 생선 냄새 가득한 옷을 입고 등교한다. 학교란 걸 처음 시작했을 때, 모두가 그녀의 어눌한 발음에 웃었다는 그 이야기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


20대 시절 봉사 단체에서 2년 가량 학습 지원하며 알게 된 코다 형제가 생각났다. 3학년과 중학생이었는데, 역시나 큰 아들은 늘 부모의 일상 생활의 통역 역할을 감당해야 했다. 어휘의 수준이 너무 높아 어린 아이가 무슨 말일지조차 정확히 모를 때마저, 혹은 어른들만 알아야 할, 그래서 듣지 말아야 할 순간들마저 알게 되는, 그래서 자연스레 철이 들 수 밖에 없는 그런 모든 상황이 주인공 루비와 닮았다. 루비는 자신의 가족이 한번도 듣지 못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재능이 있는 아이다. 그녀가 노래로 성장하여, 가족을 떠나 자립할 수 있었는데, 과연 그때 그 형제들은 어떻게 지낼지.


농인의 직업적 선택의 제약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루비가 살고 있는 집이 잘 보여준다. 미국 내에서 그런 집의 구조와 근처 이웃의 형태로 짐작할 수 있다. 반쯤 타 들어간 것 같은 벽면, 선루프 같지만 조악하게 나무를 덧대 만든 식사 공간, 대칭이 맞지 않는 붉은 색 이웃집 건물 등 이 모든 것들이 말이다. 루비는 씩씩하게 살지만, 그렇다고 그 모든 것들을 모르는 게 아니다. 아주 섬세하기에 그것들을 인지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쳐 나가는 아이다.


그녀가 노래를 불렀을 때, 부모는 듣지 못하는 대신, 다른 이들의 반응을 살폈다. 리듬을 타는 사람, 눈물 짓는 사람, 환하게 웃는 사람들의 얼굴들 속에서 내 아이의 재능을 알아챘다. 그리고 그 밤, 그 들리지 않던 노래를 루비에게 불러 달라고 한 날. 루비의 목에 손을 대고 그 진동을 들으며 딸아이의 노래를 들으려 애썼던 아빠의 장면에서 나는 눈물이 터져 버렸다. 단 한번도 듣지 못했던 아이의 목소리를 얼마나 듣고 싶었을까, 아이의 재능을 얼마나 이해해주고 싶었을까, 싶어서.


그 장면이 유독 가슴 아팠던 이유는, 단지 루비의 부모가 농인이어서가 아니다. 나의 세계를 다 알 수 없는 엄마는 그런 나를 얼마나 이해하고 싶었을까, 그리고 앞으로 나는 내 아이가 머물 세계를 다 이해할 수 없는 순간들이 올텐데, 그때 무언가를 해줄 수 없는 때가 오면 얼마나 그 순간이 서럽고 미안할까 싶어서. 그런 온갖 마음들이 범벅되서 눈물이 났다.


안타깝게만 이들을 그리지 않아서 좋았다. 이 연출을 한 감독의 시선이 좋았다. 일반적으로 코다가 겪는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풀어가면서도, 그래서 사람들이 농인과 코다에 대해 알아야 할 이야기들을 자연스레 담으면서도, 이들을 여전히 아름다운 한 인격체, 그리고 깊이 연대하고 사랑하는 가족으로 그려내는 그 지점을 담아 좋았다.


김은희 작가가 일곱 번이나 본, 내 남편이 끝까지 엉덩이를 떼지 못한 이유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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