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하고 상냥한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중2 담임이 되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11년 동안 중학교 2학년 담임이라니. 이건 거의 운명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중학교 2학년 아이들 전담마크. 중학교 담임 중에서 가장 힘들다는 중2 담임. 중1은 초등학교 7학년 느낌의 햇병아리이고, 중3은 고입 준비를 위해서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다. 상대적으로 중2 담임은 모든 선생님들이 기피한다. 중2병이 얼마나 무섭고 힘든지는 중2 담임만이 알고 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온 몸으로 받아내야하는 정신력과 체력이 필수다. 아울러, 욕 먹는 건 덤!
어쩌다 중2 담임 11년차다.
올해는 또 어떤 아이들을 만날까? 설레는 마음? 그런건 서랍 속에 넣어두고 일단 프로게이머처럼 전투를 한다는 생각을 멘탈을 정돈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발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한 해를 보내게 해 주세요."라고 울며 기도하고 있는 나를 보며 하나님도 공감하실거다. 그러다보니 기도는 필수, 매일 아침 일기를 쓰고 출근을 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일기장의 주된 내용은 '오늘도 무사히'를 반복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고들로 중2 교실은 아수라장이 된다. 그래서 오늘도 무사히 보낸 날은 오마이갓 땡큐베리버치한 하루가 된다.
어릴 때부터 친절하고 상냥한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고민 많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그런 담임이 되자고 다짐했다. 방황하고 힘들어하는 아이들의 길잡이가 되고 싶었다. 담배 피고, 학교에 나오지 않는 아이에게 붕어빵을 사서 가정방문을 갔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아이는 문 앞에 붕어빵만 놓고 가라는 매정한 이야기를 남겼다. 차가운 붕어빵과 함께 내 마음도 울었다. 그렇게, 중2 담임 1년차에서 5년차에는 아이들에게 휘둘렸다. 남들이 보기엔 친절하고, 상냥한 선생님. 내가 생각하기엔 아이들 이야기를 다 들어주는 호구가 된 선생님이었다. 지나고보니 내가 호구였어. 땅을 치고 후회한다.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경찰서라고 해서 혹시, 보이스피싱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담임반 아이가 대형마트에서 절도를 했다는 이야기었다. 해당 학생 부모님이 오시지 않아 보호자 대신에 담임교사가 와야한다고 했다. 워낙 사건사고가 많은 아이라 부모님이 오시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담임이지만 엄마의 마음으로 경찰서에 갔다. 배가 고파 초밥을 훔쳐 먹었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아팠다. 배가 아프다는 아이가 화장실에 간다고 했다. 별다른 의심 없이 경찰관은 화장실에 다녀오라고 했다.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화장실에 간 아이가 창문으로 도망을 간 것이었다. 한참을 기다리다 경찰관이 수색을 해야할 것 같다며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도망갈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친절하고 상냥한 선생님은 배가 아프다는 아이의 말을 순수하게 믿었고 화장실에서 다시 돌아올 거라고 예상했던 것이었다. 이제 친절하고 상냥한 선생님은 이제 그만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이들과 거리두기는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다.
중2 담임 6년차에서 11년 차에는 아이들과 거리두기로 다짐만 했다. 중2 담임을 많이 하신 선배 선생님께서 아이들과 거리를 두고, 집에 가면 학교 일은 잊으라고 했다. 그런데 이거 쉽게 거리두기가 안된다. 주머니 속 송곳과 기침은 숨길 수 없다고 했던가! 친절하고 상냥한 선생님이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했다. 거리두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다니. 매일 아침 일기장에 '거리두기'라는 단어를 적으며 마인드세팅을 했으나 나에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 같았다. 중2 담임으로 나에게 맞는 옷을 찾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시행착오를 겪고나니 나에게 맞는 옷은 뭘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중2 담임은 아직도 서툴고, 여전히 어렵다. 내가 중2병에 걸려 버릴 것 같다.
그렇게 중2 담임은 여전히 방황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