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잦은 정전

망할 수도 있는 것과 망할 수가 없는 것

by 오소정

몽골국제대학 교환학생 시절, 나는 나이가 제일 많은 이유로 -혹은 시키면 다 한다는 이유로- 기숙사 한국인 유학생들과 함께하는 찬양기도회인도를 맡았다. 기숙사는 학교에서 걸어서 10분정도 떨어진 4층 주택 2채와 2층주택 한채로 나뉘었는데 정해진 날짜와 시간이 되면 저녁식사가 끝난 한인유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찬양악보책이나 프린터, 복사기가 있을리 만무했고 간신히 기타 한대와 찬양악보책 하나를 나와 기타반주자가 함께 보며 인도했는데 하루는 기도회 시작 3분전에 모여있던 거실 전등이 뚝- 하고 나가버렸다. 정전이었다.


내가 지내던 2010년의 몽골은 전력공급이 불안정하여 정전이 자주되곤했다. 하필이면 기도회 직전에 정전이라니. 악보를 어떻게 보지? 써놓은 순서와 기도제목은 어떻게 보지? 내가 가사를 한줄한줄 불러줘야하는데? 순간 '망했다'는 생각만들었다. 아무것도 못하고 무릎꿇고 엎드려있었다. 내가 좀처럼 일어나지않자 아이들 몇이 자기 방으로 올라가 양초를 챙겨와 곳곳에 놓아주었다.


더이상 엎드려있을 수만은 없기에 첫번째 찬양을 시작하려고 몸을 일으키는 순간 띠디딕 하며 다시 전등이 켜졌다.


짧은 5분간의 정전이 내게 알려준 교훈은 망할수도 있는 것과 망할 수가 없는 것의 존재와 구별이다. 내 경험, 내 계획과 내 길은 망할 수도 있는 것 -대체로 상당히 꽤 잘 망하기도 하는 것- 이지만 하나님께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하는 것은 망한다 또는 fail 이라는 단어와 함께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전등이 다시 켜진 순간 준비했던 기도주제들 대신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나의 연약함을 고백하며 성령님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로 바꾸었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믿는다, 내 마음과 준비에 상관없이 예배는 망할 수 없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1개만 사용한 4개짜리 속옷 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