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는 동화]성냥팔이 소녀

늦지 않게 닿기를

by 예그리나

***


올해의 마지막 밤, 내릴 땐 예뻤던 눈들이 이제는 그저 지저분한 진흙으로 남아있었고, 새해를 기다리며 들뜬 사람들은 이미 고주망태가 되어 거리를 어지럽혔다. 나는 추위에 얼은 손을 호호-불며 얼굴을 감쌌다.


'이런 날까지 야근 하게 된 신세라니.'


짜증스레 중얼거리며 나는 지하철 막차를 가까스로 타기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한 소녀가 내게 다가왔다. 남루한 거적대기 같은 것으로 얼굴을 가리운 아이는 대략 10살 남짓 되어 보였다. 노숙인들이야 자주 보지만 아이가, 그것도 여자아이가 저런 모습인 것은 처음이기에 나도 모르게 빤히 쳐다보았다. 내게 온 아이는 낡은 상자 하나를 쓱 내밀었다.


“성냥 사세요.”


“성냥?”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연 아이의 말에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껌도 아니고 하다못해 라이터도 아니고 성냥이라니. 무슨 안데르센 동화의 성냥팔이 소녀라도 되는건가.'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 짓다가 아이가 내민 성냥을 바라보았다. 심지어 새 것 같지 않은 낡은 종이로 만들어진 성냥갑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성냥갑을 잡은 꼬질꼬질하지만 작고 연약한 아이의 손도 눈에 들어왔다. 나는 지갑을 꺼내 꼬깃꼬깃한 지폐를 아이에게 건넸다. 오천원짜리였다. 아이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고개를 꾸벅 숙이며 돈을 잡아들었다. ‘너 어디서 사니’라는 질문을 하려던 찰나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걸 놓치면 택시비로 오천원보다 더한 돈이 깨질 것이 분명했다. 나는 아이와 지하철을 번갈아 보다가 결국 지하철에 올라탔다. 지하철에 타 어둑한 역 안에 홀로 서 있는 아이를 보았다. 지하철은 시간을 주지 않고 매정히 출발했다.


***


집에 온 나는 아이에게 오천원 주고 산 성냥을 꺼넸다. 오천원, 성냥 값이기에는 비싸고 마음에 착잡함을 덜기 위한 것이기에는 부족한 금액이었다.


‘어린애가 홀로 있다고 경찰에 신고했어야 했나? 아니, 나 말고 누군가가 하겠지.’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성냥을 보았다. 피곤함을 좁은 침대에 덜어내고 무심하고 삭막한 내 마음에 조소를 지었다. 그러다 문득 소원을 비는 마음으로 성냥 불 한 개를 켜보았다.


‘이 성냥하나로 온 세상이 포근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치익-하는 소리와 함께 성냥 불이 타올랐다. 그 불빛은 얼어있던 손을 살포시 녹여주었다. 불꽃을 빤히보자 꼬질했던 여자아이의 손이 아른거렸다. 나는 그 손을 잡으려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작은 불꽃은 기다리지 못하고 금세 꺼져버렸다. 짜증스러운 기분에 나는 성냥갑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몸은 피곤한데 뒤숭숭한 기분에 잠이 오지 않았다. 뒤척이다 일어난 나는 냉장고 문을 열어 맥주 하나를 꺼내고 벌컥벌컥 마시었다. 흘러오는 액체는 차가왔지만 먹먹한 심장에까지 잠시간 시원함을 전해주었다. 그러나 잠시일 뿐이었다. 몸은 더 추워졌고 어쩐지 더 허한 기분이 들어 나는 다시 멍하니 방 안에 앉았다. 그리고 바닥에 흩뿌려진 성냥들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뭐에 홀린 듯 주섬주섬 성냥을 다시 주워들었다. 다시 한 번 성냥에 불을 붙이려 했으나 던질 때 흠집이 난 건지 시원스럽게 불이 붙지 않았다. 시익- 시익- 하고 소리와 연기만 날 뿐 불이 붙지 않았다. 나는 손을 부들부들 떨며 무릎까지 꿇고 나도 모를 어떤 간절한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불을 붙였다. 누가 보면 무슨 성냥불 하나 붙이는데 저리할까 싶을 정도로 과장된 동작이었다.


치익-하고 성냥에 다시 한 번 불이 붙었다. 아까보다 더 또렷하고 커다란 불빛이 타올랐다. 나는 이번에는 소중하게 손으로 불빛을 감쌌다. 얼었던 몸과 마음이 스르륵 녹아내렸다. 다시금 내게 성냥을 팔던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소녀는 하얀 눈이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추운 눈 밭의 소녀가 걱정되어 나는 소녀에게 다가갔다. 나 염려와 다르게 아이는 하얀 눈 속에서 말갛게 미소짓고 있었다. 그 웃음이 너무 아름답고 평안해 보여서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따스한 온기가 몸을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내 성냥불이 꺼져버렸다. 나는 마지막 남은 성냥을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다시 성냥을 킬 수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아이는 이 추위에 뭘 하고 있을까?’


나는 내게 미소짓던 소녀에게 이 불빛을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으로 성냥을 소중히 잡아들고 현관문을 나섰다. 싸늘한 바람이 어쩐지 아까처럼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


택시에서 내려 소녀를 본 곳에 왔지만 지하철로 들어가는 입구는 이미 닫혀 있었다. 어두컴컴한 밤, 날은 몹시 추워 얇은 옷을 입었던 소녀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나는 소녀를 만났던 지하철 역 근처를 서성거렸다. 성냥 한개를 들고 어둑한 거리를 한참동안 돌아다녔다. 새해의 새벽이라 그런지 밤임에도 사람들은 휘청이며 거리를 걷고 있었다. 내가 던져 방안에 흩뿌려졌던 성냥개피들처럼 어딘가 슬퍼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 속에서 하염없이 소녀를 찾았다. 입에서 하얀 입김이 피어오르며 이제는 손이 시렵고 발이 아파 점차 지쳐갔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나는 손에 든 성냥개피를 차마 놓치 못했다. 시간은 계속 흘러만 갔고 나는 걷고 또 걸었다. 한참을 걸은 나는 가기 꺼려지는 좁고 곯은 길까지 걸음하기에 이르렀다. 좁은 골목길의 끝에 다다랐을 때 나는 쪼그려 앉아 있는 소녀를 발견했다. 나는 아이를 놓칠세라 헐레벌떡 달려 아이 앞에 멈춰섰다. 그리고 마주 쪼그려 앉았다.


“안녕.”


내 목소리에 아이는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아이의 볼은 추위로 붉어져 있었다. 나는 서둘러 외투를 벗어주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성냥 불이 켰다. 취익-하며 불빛이 환하게 타올랐다. 그 불빛은 나와 아이를 모두 따스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니, 넘칠만큼 포근했다.


“나랑 같이 가지 않을래?”


나는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이는 조그마한 손으로 내 손을 마주 잡았다. 마침 새벽녘이 되어 해가 불그스름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야.’


나는 아이와 함께 미소지었다. 추운 밤, 내가 얼마나 큰 축복을 받으며 즐거운 새해를 맞이하였는지 거리의 사람들은 아직 알지 못할 것이다. 성냥 한 개피의 사랑, 희망, 그 따스함이 내 마음에 환히 자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