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는 동화]인어공주
사랑, 물거품, 그리고 증오
물거품이 되어버린 인어공주의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고통을 감내하고 왕자를 끝내 죽이지 않아 물거품이 된 인어공주, 대신 선한 인어공주는 공기의 정령이 될 수는 있었지만 사랑을 얻어 왕자와 행복하게 사는 것은 실패한다. 인어공주는 어떻게 물거품이 되는 것을 감내할 만큼 인간을 깊이 사랑할 수 있었을까? 인어가 정말 있었다면, 그리고 지금도 존재한다면 그들은 인간을 사랑할까? 인어와 인간에 대해 생각하며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를 써본다.
***
내가 사는 곳은 고약하고 어둑한 바다의 아주 깊숙한 곳이었다. 탁한 물살기는 얼마나 지멋대로인지 늘 나를 괴롭혔고 때때로 나타나는 상어는 얼마나 사납고 위험한지 가족들과 나는 언제나 불안스럽게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그 어떤 인어들 보다 뛰어난 재주를 지닌 나의 할머니가 해주는 옛 이야기만이 나의 즐거움이었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는 이곳이 유리처럼 투명하고 산호들이 춤추고 진주가 광채를 발하며 오색 빛깔이 펼쳐진 그 어떤 곳보다 아름다운 곳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할머니의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그 이야기는 너무 흥미로워서 하염없이 들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럼 왜 지금은 이렇게 황폐해진건데요?”
“인간들의 욕심 때문이지.”
할머니는 자주 인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듣기로는 포악하고 잔인하고 상어보다도 더한 괴물이었다. 지느러미가 없어 바다에 살지 못하고 육지를 걷는 파괴자들.
“한때는 그들과 왕래하며 사이가 좋았을 적도 있었지. 그들이 물에 빠지며 구해주었고, 그들도 우리에게 감사를 표했단다.”
할머니는 지친 꼬리를 바위에 기대며 저 위를 바라보았다. 어둠에 잠긴 바다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음말을 기다리듯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지.”
“어째서요?”
“인간이 얼마나 간악한 존재인지 몰랐거든.”
할머니의 색바랜 눈동자는 슬픔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할머니에게서 인간들의 배신, 탐욕, 잔인함에 대해 듣게 되었다. 그들은 우리의 인어라 칭하고 아름다움을 칭송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피를 먹으면 영생을 얻는다거나 인어들이 인간을 유혹해 바다로 데려간다는 말이 인간들 땅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후 인간들은 우리를 포획하고 죽이는 것을 반복했다. 바다에 독을 넣고, 거짓으로 유인해 심장을 찌른 인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분노에 휩싸였다.
“인간들로 인해 우리는 멀고 먼, 바다의 아주 깊숙한 곳으로 도망쳤지.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어. 인간들은 계속해서 바다를 어지럽히고 자연을 망쳐놓았지. 바다는 점점 죽어가고 있단다. 마치 이 할미처럼 말이야.”
할머니는 쓸쓸히 웃으며 바닷가에 뒹구는 쓰레기들을 바라보았다. 종종 저 쓰레기를 먹고 물고기들은 죽음을 맞이했고 쓰레기를 피해 다른 곳으로 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다른곳도 이미 오염된 것은 마찬가지였다. 바다는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았다.
“할머니는 어떻게 그렇게 인간에 대해 잘 아세요?”
이건 문득 궁금해져 물은 질문이었다. 아주 오래 산 거북노인도 인간을 잘 알았지만 할머니는 인간의 더 깊숙한 내면을 알고 있었다. 내 단순한 질문에 할머니의 두 눈이 흔들렸다.
“...옛날, 인간남자에게 사랑에 빠져 인간세상으로 간 인어를 알고 있단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내 두 눈이 커졌다.
“인간세상으로요?”
“그래, 난 그 애에게 다리를 만들어주고 대가로 목소리를 가져갔지. 하지만 그 애가 사랑한 인간은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고, 그 인어는 결국 물거품이 되어버렸어. 다리를 얻은 대가는 죽음이었어. 분명 어리석었지. 하지만 순수하고 선량한 아이였다.”
할머니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깊은 슬픔에 젖어있었다.
**
오늘은 유난히도 파도가 강하게 쳤다. 나는 꼬리를 휘적이며 파도를 피해 바위 뒤로 숨었다. 그때, 빠른 속도로 누군가 물살에 빨려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인어인가 싶었지만 옷을 입고 있었고 다리가 있는 걸로 보아 인간이 분명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말로만 들었던 인간이 내 눈 앞에 있었다. 나는 파도를 타고 인간에게로 다가갔다. 강한 물살이 꼬리를 쳐 아팠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가까이서 인간을 안아들었다. 물에서는 살 수 없는 인간이니 그냥 두면 죽을 것이 분명했다. 분명 사악한 얼굴과 칼을 지니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인간은 너무도 약해보였고 공포에 떠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인간을 안고 바다 위로 향했다. 힘차게 꼬리를 흔들고 헤어쳐 저 위, 육지로 향했다. 육지에 도착한 나는 모래 더미에 그를 눕혔다. 하얗게 질렸던 얼굴이 조금씩 생기를 찾아가고 있었다. 나는 왜 인간을 살린 것일까. 그들은 우리를 죽이고 망가트렸는데 말이다. 한편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하염없이 인간이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태양의 환한 빛을 받으며 그는 눈을 떴다. 쿨럭-소리를 내며 물을 쏟아 낸 그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내 위아래를 보다 흔들리는 내 꼬리를 발견하고 두 눈이 커다래졌다.
“인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날 구해줬군요!
고맙다는 눈빛을 보내는 인간을 보며 난 희망을 보았다.
“그래, 내가 널 구해줬으니 내 부탁을 들어줘.”
“그게 뭐죠?”
“바다를 더 이상 더럽히지 말아줘. 인어와 바다 생물들은 인간을 증오해. 너희는 우리의 터전을 망치고 있어.”
“그건... 인간이 발전하면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들이에요.”
“어쩔 수 없는 일들이란 없어. 너희가 만든 결과지. 이대로라면 바다는 살 수 없는 곳이 될거야.”
“하지만...”
인간은 대답하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실망스러운 태도에 나는 더욱 슬퍼졌다. 왜 과거 인어가 물거품이 되었는지 알겠다. 인간은 사랑이 없다. 바다에서 구해낸 이 인간은 또 다시 바다를 오염시킬 것이다. 인간을 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다시는 그들을 바다에서 구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등을 돌렸다. 그때 인간이 나를 붙잡았다.
“잠시만요. 바다 속으로 돌아가려는 건가요?”
“그래.”
“나도 데려가 줘요. 난 항상 바다를 동경해왔어요. 깊은 바다를 구경하고 싶어요.”
할머니에게 많은 것을 배운 나는 인간의 다리를 인어처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대가가 필요했다.
“대신 너의 목소리가 필요해. 넌 다리 대신 지느러미를 얻고 목소리를 잃을거야. 하지만 니가 육지로 돌아갈 때 다시 바꾸어 줄테니 걱정마.”
나는 웃으며 진실과 거짓을 섞어 말했다. 지느러미를 죽고 목소리를 잃는 것은 진실이었다. 하지만 육지로 돌아갈 때 돌려줄 수는 없었다. 그는 육지로 돌아갈 수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는 신이 나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은 대가를 치루게 될 것이다. 나는 인간의 손을 잡고 바다로 이끌었다. 만약 정해진 시간 내에 내가 그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는 목숨을 지키겠지만 자신이 더럽힌 바다에서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를 끝까지 사랑하지 않으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질 것이다. 나는 진정 궁금했다. 과연 인간은 사랑받을만한 존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