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덕여 Oct 02. 2023

2023년 9월 30일

마지막 주

1.

 화장실과 안방 중 고민하다 조금이라도 청소에 용이한 화장실을 선택했다. 몇 달 전 인터넷으로 산 '끈'을 매달았고 자그마한 의자를 가져다 놓았다. 의자에 발을 올려놓은 순간 놀랍게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의아할 정도로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아 당황스러웠지만 어렵게 다짐한 것이기에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양발을 올리고 '끈'에 손을 올려놓은 순간 갑자기 책상 위에 적어놓은 편지에 오탈자가 생각났다. '의'와 '에'.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었지만, 마지막 순간 완벽하고 싶었다. 이렇게 돼버린 것도 스스로에 대한 부족함과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한 열등감이 8할 이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엔 완벽하고 싶었다.


 다시 썼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적어놓은 편지를 고쳐 쓰고 보니 목이 말랐고 배가 고팠다. 아껴먹었던 버번을 물컵에 한잔 가득 따르고 냉동식품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허겁지겁 먹었다. 



2.

 잠이 들었다고 꿈을 꾸었다.


 놀랍게도 여러 꿈을 꾸었다. 


 오래전 짧은 기간 만났던 그녀가 등장하여 이전과 같이 질펀한 섹스를 했으며 끝이 난 후에 그녀는 사라졌다. 사라졌는지 다른 사람으로 대체된 것인지 모르겠으나 다른 사람이 옆에 있었고 그 사람과 나는 오래된 재래시장을 같이 거닐었다.


 우리는 술을 마셨고 나는 그에게 가지 말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는 떠났고 혼자 남겨진 채 술을 계속해서 마셨다. 계속해서 술을 마셨으나 그 누구도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3.

 잠에서 깼다. 


 목이 말랐고 물을 마셨다. 날씨가 흐렸으나, 춥진 않았다.


 핸드폰을 보니 아는지 모르는지, 늘 그렇듯 광고 문자가 여러 통 와 있었다. 세상은 달라진 게 없었고 어제에 내가 무엇을 하려고 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할 정도로 나도 달라진 게 없었다.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제의 '끈'이 매달려 있었고, 나는 그 '끈'을 풀어 내려놓은 뒤 오줌을 쌌다.



작가의 이전글 2023년 6월을 처음 살고 있는 30대 남자의 단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