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몰되지 않는 삶, 엄마로 살아가는 나의 전략

무계획이 계획입니다만

by 양지드림

사람들이 종종 묻는다.
“육아휴직은 얼마나 쓸 계획이야?”
“언제 다시 회사로 돌아올 거야?”

나의 대답은 언제나 같다.
“글쎄, 잘 모르겠어. 지금 내 전략은 무계획이 계획이야.”


어떻게 보면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안다. 우리는 환경의 동물이다. 그리고 그 환경 속에 있으면, 우리는 어느새 매몰되어 버린다.
학생일 때는 공부에, 회사원일 때는 성과와 관계에. 그 속에서 우리는 현실을 왜곡되게 바라보기도 한다.
지금 당장 눈앞의 문제가 전부인 것처럼, 그 문제만이 나를 정의하는 것처럼.

출산 후 나는 산후우울증을 겪었다.

걸리고 싶어서 걸리는 게 아니다. 내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나는 성과 중심의 삶을 살아왔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원하는 회사에 입사하고, 승진과 자격증 합격… 그 모든 일들은 나의 ‘성과’였다.
출산 역시 분명 위대한 일이었지만, 출산 직후의 나는 내 모습이 너무 싫었다.
예쁜 아기를 바라보며 행복하기보단, 흐물거리는 살, 멍한 눈빛, 끝없는 집안일과 외로움에 매몰되었다.


어느 날, 남편의 친구가 집에 놀러와 함께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나는 맥주 한 캔을 들고 있었고, 그는 내게 말했다.

“애 엄마가 애를 봐야지 술 먹으면 쓰나?”
그 말은 내게 날카로운 칼처럼 꽂혔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사실, 그의 말이 문제라기보다는, 내 마음의 상태가 그런 말에 상처받을 만큼 낮아져 있었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출산 전에는 누구에게도 무시받지 않았다고 느꼈는데, 왜 ‘애 엄마’가 되니 무시받는 기분이 드는 걸까.
그건 현실이 아니라 내 안의 낮아진 자존감이 만들어낸 감정의 프레임이었다.

운동을 하면 근육이 붙고, 공부를 하면 내공이 쌓이듯이
잘못된 생각들도 쌓인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나 자신을 갉아먹는다.

‘나는 몇 점짜리 엄마일까’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하지 못해 힘들어하던 내게
남편은 조용히 말했다.

“은지야, 복직하든 말든 네가 하고 싶은 거 해. 괜찮아.”
“우울증의 치료는 일상의 회복이래. 네가 놓은 것들이 마음에 걸린다면, 다시 해봐.

우리는 부모니까.
딸에게 애 낳고 여자가 포기하는 삶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이번엔 내가 육아할게.”

그 말에 나는 큰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그렇게 4개월 만에 복직했다.
일상으로 돌아가니 조금씩 내 안의 감각들이 깨어났다.
내게 내밀어진 새로운 명함 ‘엄마’라는 삶을 인정하지 못하고 복직을 선택했지만,

그 선택 속에서 나는 새로운 것을 깨달았다.
남편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졌다.
‘내게 육아의 가치를 스스로 느끼게 해주고 싶었구나.’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구나.’

육아에서 잠시 벗어나 바라본 시간은 새로운 풍경을 보여주었다.

그토록 힘들다고만 여겼던 하루하루가, 사실은 너무나 소중한 순간들이었다는 걸.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을 나는 스스로 지나쳐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이런 질문을 해본다.
“나는 정말 0점짜리 엄마일까?”
“지금 내가 쥐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무엇을 놓기 싫은 것일까?”

"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은 무엇일까?"

" 내가 원하는 가치들도 어쩌면 지금 내 환경 속에서 결정되었고 매몰된 선택인가?"


나는 지금 둘째 출산을 앞두고 있다.
첫째를 키울 때보다 이번엔 나를 조금은 더 다독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완벽한 엄마가 아니어도, 행복한 엄마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이것 또한 분명 성장일 것이다.

내가 원하는 삶의 모양을 스스로 그려가고 있다는 증거이기에.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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