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개월 차 엄마가 돌아보는, 이서의 생애 첫 이야기
우리 아이가 태어났다.
젊은 20대 부부였던 우리는, 건강에 대해선 조금의 걱정도 하지 않았다.
나는 산모들 중에서도 나름 젊은 편이었고, 남편 역시 건강했다.
그저 당연하게도, 우리 아이는 건강할 거라 믿었다.
하나님은 그 믿음 속에 어떤 가르침을 담아 두셨을까.
이서는 2021년에 태어났다.
태어났을 때는 손가락, 발가락 모두 열 개씩.
아무런 문제없이 세상에 나와주었고,
남편처럼 진한 쌍꺼풀일 줄 알았지만 오히려 감자같이 생긴 그 모습마저 사랑스러웠다.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3kg의 아기를 데리고,
우리는 첫 소아과 진료를 받으러 갔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청진기를 대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심장에서 잡음이 들립니다. 대학병원에 가보셔야겠어요.”
그 말 한마디에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그 해는 코로나 오미크론이 한창 퍼지고 있었던 때였다.
팬데믹 시대의 작은 생명, 그리고 대학병원이라니…
두려움이 밀려왔다.
불안하고 또 불안했다.
첫 아이였고, 모든 게 처음이었던 나에겐
작은 바람에도 흔들릴 것 같은 아이를 데리고 가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 무서웠다.
남편은 자영업을 하고 있어 함께 갈 수 없었고
나는 괜찮은 척 아이를 포대기에 꼭 안고 병원으로 향했다.
지금도 그날의 얼굴이 상기된 내 모습이 생생하다.
병원에선 아이의 작은 가슴에 전극을 붙이고
보이지 않는 혈관을 더듬어 피를 뽑았다.
그 얇은 팔에서 피가 나오는 걸 보며,
“내가 임신 중에 더 잘했으면, 건강하게 관리했으면…” 하는 자책만 쏟아졌다.
심장 초음파 검사는 50분 넘게 계속되었고,
불안한 마음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요…?”
그때 돌아온 대답은 내 가슴을 후벼 팠다.
“정상이면 이렇게 오래 안 봅니다.”
그 말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 상황에서 꼭 그렇게까지 말해야 했을까.
나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입술을 깨물며 참아야만 했다.
결국, 우리 아이는 심실중격결손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심장에 구멍이 있었고, 언제든 심부전이 올 수 있다는 말까지 들었다.
수술 여부를 두고 끊임없이 묻고 또 물었지만,
의사는 “아직은 지켜보자”고만 했다.
그 날 밤, 나는 처음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다른 건 바라지 않아요.
우리 애기, 건강하게만 해주세요.”
산후조리원에서 나와 아이를 안고 다녀온 대학병원.
신생아와 함께한 코로나 시기의 병원 진료는,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고된 하루였다.
다행히도 다른 대학병원에서,
“심장 구멍이 작지는 않지만, 조금 더 키우고 수술해도 괜찮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에 의지하며,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30일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또 이상함을 느꼈다.
기저귀를 갈다 보니 탈장이 의심되었고,
새벽 1시, 다시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결국 탈장 수술이 필요했지만,
심장 상태로 인해 일반적인 수술이 어려웠다.
흉부외과 소견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설명은
나에겐 또 다른 큰 벽이었다.
이서가 태어난 지 58일째 되는 날,
그 작은 몸에 수술 절개를 해야만 했다.
그 날 역시 코로나로 보호자는 한 명만 병원에 머무를 수 있었고,
남편의 빈자리가 그 어느 때보다 아프게 느껴졌던 밤이었다.
밤새 금식하며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아이를 안고,
나는 아이보다 더 작은 마음으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작은 이서가 자기 몸보다도 더 큰 링거를 꽂고
수술실로 들어가는 모습은 지금도 내 눈앞에 선하다.
나는 아이를 낳으면 많은 걸 바라고,
욕심도 많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하나님은 “건강”이라는 단 하나의 소중함을 가장 먼저 알려주셨다.
그때의 아픔과 두려움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 가족은 더욱 건강한 삶을 지향하게 되었고,
이서는 평균 이상으로 잘 자라고 있다.
지금의 우리 아이를 보면,
누가 봐도 어디 아팠던 아이였는지 모를 만큼 밝고 건강하다.
그 일련의 시간이, 우리 가족을 또 한 번 성장하게 해주었다.
육아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아직 40개월차 엄마인 나는 명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단 하나는 확실히 알겠다.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아이가 아프다는 것이, 세상이 무너지는 일이라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