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분만vs제왕절개
산후조리원은 보통 임신 20주 차쯤부터 알아보기 시작한다. 내가 다니는 병원과 연계된 곳을 선택하거나, 지역에서 유명한 곳을 찾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산후조리원의 비용은 평균적으로 2주에 300만 원 정도로 상당한 부담이 된다. 좀 더 좋은 곳을 원한다면 2주에 700만 원대까지 올라가고, 서울처럼 땅값이 비싼 지역은 평균 비용 자체가 더 높다. 나도 여러 곳을 둘러보았는데, 시설이 특별히 좋지 않은 곳도 2주에 300만 원을 받고 있었고, 조금 더 나은 환경을 원하면 700만 원에 가까운 금액을 지불해야 했다. 그러나 현실적인 여건이 따라주지 않아 아쉬움을 느끼는 산모들도 많다.
산후조리원은 계약 여부와 등급에 따라 제공되는 서비스가 달라진다. 다행히 나는 지역에서 많이 이용하는 곳이자, 내가 다니던 병원과 연계된 조리원을 무난하게 계약할 수 있었다. 조리원 예약이 끝난 후 20주 차가 지나면서부터 태아는 무럭무럭 자란다. 태동이 느껴지고, 가끔은 대화에 반응하기도 한다. 아빠의 중저음이 잘 들린다기에 동화책을 읽어주기도 했다. 이런 순간들은 산모가 느낄 수 있는 소소한 기쁨이다.
아이는 40주가 되어 태어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30주 이후에도 조산하는 경우가 있다. 다행히 의료 기술의 발달로 생존율은 높아졌고, 예상치 못한 변수가 항상 존재한다. 내 경우, 40주가 지나도록 출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태아가 거꾸로 있는 역아도 아니었고, 의사 선생님께서 자연분만을 권유하셨다. 40주가 가까워질수록 내 관심사는 온통 출산 과정과 출산 후 회복에 집중되었다. 출산 관련 영상을 찾아보며 심장이 두근거렸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고통에 대한 불안감이 밀려왔다.
결국 40주 1일 차에 의료진과 상의하여 유도분만을 결정했다. 산모 가방을 챙기고 샤워를 마친 후, 남편과 함께 병원으로 향하는 길은 긴장되면서도 설렜다. 처음 진통이 시작될 때는 ‘이 정도쯤이야’ 싶었고, ‘혹시 나는 출산 체질일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은 점점 더 심해졌다. 6시간, 7시간이 지나도 자궁문은 크게 열리지 않았고, ‘4cm 열렸어요’, ‘이제 5cm 정도네요’라는 말이 반복될수록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 몰려왔다. 남편이 괜찮냐고 묻자, 침을 흘리며 겨우 “말 걸지 마”라고 속삭였던 기억이 난다.
무통주사가 고통을 줄여준다고 했기에, 나는 고통이 심해질수록 주사를 미친 듯이 눌렀다. 하지만 무통주사를 맞다 보니 하반신의 감각이 사라졌고, 결국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남편과 간호사의 부축을 받아 소변을 보았고, 변기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내 모습이 너무 무력하게 느껴졌다. 출산의 굴욕 중 하나로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진통이 시작된 지 12시간이 지나자, 가족들은 점점 애가 탔다. 그러던 중, 아이의 심박수가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다. 양수가 많이 터졌고,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결국 응급 제왕절개를 결정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13시간이나 진통하지 않았을 텐데! 자연분만 하고 싶었는데!’라며 엉엉 울었지만, 의사 선생님은 단호하게 “아기가 위험하니 수술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수술 준비가 빠르게 진행되었고, 나는 하반신 마취와 수면 마취 중 선택해야 했다. 배를 가르는 모습을 볼 자신이 없어 “저 좀 재워주세요”라고 하며 울다 잠이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도담이가 태어났다.
수술 후 깨어났을 때, 내 배 위에는 무거운 모래주머니가 올려져 있었고, 엄청난 추위가 몰려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궁금했던 건 아이가 무사한지 여부였다. 그렇게 우리 도담이는 세상에 태어났고,
내 품으로 와주었다. 그런데 아이는 마치 “엄마 뱃속이 더 좋은데, 왜 꺼낸 거야?”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웃었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아기가 감자처럼 생겨 조금 당황하기도 했다.
남편에게 “자기 닮아서 쌍꺼풀 진한 아기일 줄 알았는데, 감자 같아”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 작은 감자가 내 딸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만약 누군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우리 딸을 낳은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우리 도담이를 통해 ‘감격’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한 생명이 내 삶에 들어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고, 나는 이 아이와 함께 성장해 나갈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