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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지드림 Jan 05. 2025

임신 후 우울증

바람만 불어도 화가 난다

임신 중 나도 느꼈다. 내가 예민하구나. 내가 좋아하던 음식이 거북하게 느껴지고, 좋아하지도 않던 음식을 찾고 집착하는 내 모습이 낯설었다. 일반적으로 화가 나지 않았을 일들도 크게 와닿았고, 눈물이 났다. MBTI가 나를 전부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나는 T형으로 감정보다는 해결책과 답을 찾는 사람이다. 그런데 임신 중에는 떨어지는 낙엽에도 슬픈 감정이 느껴졌고, 계절이 바뀌는 바람 냄새부터 다르게 느껴졌다.

첫째를 임신 중 하루는 퇴근하고 남편을 보자마자 엉엉 울었다. 화가 북받쳐 울었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임신 중에는 호르몬 변화, 특히 코티솔 수치가 높아졌다가 출산 후 급격히 감소한다. 코티솔은 스트레스 대처 능력을 일시적으로 약화시키고,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의 감소와 증가가 반복된다. 이러한 호르몬 변화는 감정의 기복, 우울감, 피로감을 유발하며 이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저 호르몬의 노예일 뿐이다. 그런데도 "너가 극복해야지"라는 말은 살인적이다. 나도 내가 왜 화가 나는지 알 수 없었다.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옆 테이블 아저씨가 국밥을 허겁지겁 먹는 모습이 견딜 수 없이 거슬렸고, 옆 직원의 핸드크림 냄새가 하루 종일 머리를 아프게 했다. 집에 들어가는 엘리베이터가 잘 오지 않는 것, 신호등이 늦게 바뀌는 것마저 슬펐다. 생각해 보면 화를 낼 일이 아니었다. 임신 전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들인데, 바람만 불어도 화가 나는 내 마음에 내가 힘들었다.

신은 한 아이를 키우는 강단을 호르몬의 변화로 주신 걸까? 신이 주신 새 생명의 가치는 크다. 이것을 잘 해쳐나가는 것도 내게 큰 숙제일지 모른다.


출산 후 2시간마다 깨서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듣고 분유를 먹이는 시간은 "100일의 기적"을 기다리는 과정이었다. 당시 남편은 일을 하고 있었고, 나는 전업주부로서 주양육자로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내 몫이라 여겼다. 나는 아침에 출근하듯 집안일을 하고, 집안을 스페셜하게 청소하고 싶었다. 그런데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일은 나를 미치게 했다. 매일매일 쓸고 닦아도 또 나오는 먼지. 매일 설거지와 싸우는 날들. 남편이 저녁에 집에 들어와 함께 저녁을 먹는데, 내가 물었다. "자기야, 집 깨끗해?" 남편은 "응, 깨끗해~"라고 대답했지만, 나는 그 순간 울음을 터뜨렸다.


"응, 안 하면 티가 나는데, 하면 티가 안 나. 자기는 내가 얼마나 열심히 청소하는지 모르지?"라며 엉엉 울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괴롭혔다. 한 번은 남편이 새벽에 아이 분유를 먹이고, 분유병을 설거지통 위에 올려두었다. 아침에 그걸 본 나는 남편의 도움보다는 설거지통 위에 올려진 젖병에 꽂혔다.

"자기야, 그래, 나는 설거지하는 사람이지. 이거 좀 닦아놔 주는 건 어려운 일이었어? 내가 해야 하는 거지?"라며 화를 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남편이 그렇게 행동한 것이 정말 그렇게 싫었을까? 왜 그토록 화가 났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때 나는 분명히 우울했다. 마음이 힘들었다. 뭐랄까, 답도 없는 슬픔을 가진 그녀가 가끔 떠오른다.

그날 남편이 출근 후 전화를 걸어 "은지야, 밥 먹었어?"라고 물었다. 나는 "자기야, 내가 그렇게 화내고 출근했는데 그게 왜 궁금해?"라고 삐딱한 말을 했다. 그런데도 남편은 따뜻하게 말했다. "은지야, 나는 너랑 풀고 싶어서 연락했어. 여전히 은지는 화가 났네. 내가 잘못했어. 나도 새벽에 돕는다고 했는데, 설거지까지 미처 생각을 못했어. 은지가 힘들었구나. 미안해."


그 말을 듣고 하루 종일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나보다 내 감정을 더 먼저 헤아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결혼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대단하다고 느껴지고 존경스러웠다. 이때 내가 배운 것이 있다. 배우자가 힘들 때 내가 가진 감정보다 상대의 감정을 먼저 헤아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남편의 친구 중 가부장적인 사람이 하나 있다. 아이가 태어난 후, 아이를 보겠다며 놀러 와 함께 한잔하자고 했더니 그는 내게 "애엄마가 애를 봐야지 무슨 술이야?"라고 말했다. 그 말이 괜히 서운했다. 이 사람이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남편은 일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술 한잔하고 풀어야지. 여자가 애를 봐야 하지 않겠나?"라며 덧붙였다.

여자가 돈을 벌지 않으니 남편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며 내조를 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화가 치밀게 만들었다. 왜 내가 애를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말을 들어야 할까? 출산 후 겪는 엄청난 신체적 변화로 인해 일시적 경제적 능력을 상실했다고 무시당하는 말을 들을 필요는 없다.

'애엄마'가 가져야 할 태도와 자질은 누가 함부로 규정할 수 없다. 사회적 인식도 바뀔 필요가 있다. 출산모의 노력과 희생을 존중해야 한다. 우리는 서로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대신 이해하고 배려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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