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가장 질투나는 당신
나는 요즘 당신이 제일 질투나. 당신은 바로 내 남편. 임신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기쁨에 가득 찬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런데 그 표정을 보며 혼란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마 놀란 반응을 보였어도 화가 났을 거고,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면 더 화가 났을 거다. 사실, 내가 어떤 반응을 바랐는지조차 모르겠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회사엔 이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부모님께는 뭐라고 해야 할지. 승진을 앞두고 있었는데, 임신 소식이 부정적으로 작용하면 어쩌지? 사람들이 뒷말을 하지 않을까? 혼전임신에 대한 편견이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그런 반면, 남편은 부모님께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전하고 결혼 준비에 나섰다. 그는 정말 즐거워 보였는데, 그 모습이 오히려 내가 가장 질투나는 대상이 되었다.
내 삶은 모든 게 변하는 것 같은데, 남편은 변하는 게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임신 사실을 5주 차에 알게 되었고, 6주부터 내 몸은 내 몸 같지 않았다. 입덧이라는 놈, 정말 고약하다. 밥 냄새가 그렇게 지독한 냄새일 줄이야. 회사에서 여직원이 쓰던 핸드크림 향조차 숨 막히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걸 대놓고 말할 수도 없었다.
사람들은 마치 나에게 하지 말아야 할 2만 가지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술은 당연히 안 되고, 회도 먹지 말라고 한다. 추운 날엔 밖에 나가지 말라고 하고, 12주 전까지는 조심하라고 한다. 뭘 조심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냥 무조건 조심하란다.
나는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남편은 다 잘 먹고, 잘 자고, 멀쩡히 지낸다. 양치질만 해도 토할 것 같아서 두려운데, 토하고 또 토한다. 새벽 두 시에도 토하고, 출근길엔 차를 세워가며 토했다. 결국 병원에서 링거를 맞으며 하루를 버텼다. 회사에서도 쉬지 못했다. 단축 근무 제도가 있었지만, 별다른 휴직제도는 없다. 사실 휴직이 있다해도 내 임신은 업무일정 상 계획에 없어 대신 처리해줄 사람도 없었다.
남편은 점점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집에서는 음식 금지령을 내렸는데, 주말에 나를 재우고 혼자 끝방에서 족발을 시켜 먹었다. 그런데 내가 그만 깨어버렸고, 토를 한 뒤 남편의 족발을 보고 울어버렸다. 그날 잠에서 깬 이유는 속이 울렁거려 화장실에서 토를 하고 나운 그 순간이였다. 그 순간 이렇게 생각했다. "남편은 배가 고프구나. 나만 힘든거구나."
지금 돌이켜 보면, 남편은 내가 얼마나 아픈지 몰랐던 거다. 여자인 나도 임신을 겪어보지 못했다면 얼마나 힘든지 아픈지 뭘 견디고 있는지 몰랐으니까, 남편도 배가 고팠을 거고, 노력했을거다. 그런데도 남편이 미안하다고 나를 안아줬다. 사실, 나도 미안했다.
그래서 너무 서러운 나머지 엄마집에 갔다. 아빠가 엄마에게 밥달라고 하는데 "아빠!! 나 냄새나서 밥하지마!!"라고 했더니 아빠가 하는 말 "야! 나는 배가 고파 밥먹어야지, 입덧한다고 생각하니까 더 속이 안좋지 나가서 운동하고 나는 괜찮다~~ 생각해야 괜찮은거야!! 밥먹어 지지배야" 하는데 와..우리아빠 참 엄마 고생시켰겠다 하면서 내 남편이 아니라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임신, 출산도 쉽지는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에 잠겼다.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입덧은 당연한 거예요. 그래도 아이는 잘 크고 있네요." 그러면서 들려준 심장 소리. 쿵쾅쿵쾅 뛰는 소리를 들으니, 내 몸이 이렇게 힘들어도 아이는 잘 자란다는 게 너무 고맙고 기특해서 또 울었다.
임신은 질병이 아니라서 더 어렵다. 그런데도 나는 버틴다. 슈퍼의 캐셔 이모들이 "새콤달콤이 짱"이라며 건네준 과자는 그날 가장 큰 위로였다. 그들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주는 경험자였다. 때로는 남편보다도 더 큰 위로가 되었다.
오늘도 울고 웃으며 하루를 버틴다. 아이의 심장 소리가 나를 다시 힘내게 만든다. "아가야, 엄마가 너 때문에 오늘도 잘 버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