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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지드림 Dec 25. 2024

어쩌다, 임신

연인에서 배우자로

초중고 시절엔 늘 다음 단계를 향해 달렸다. 좋은 대학을 목표로, 그다음엔 안정된 직장을 위해서. 그런데 나는 조금 다른 길을 선택했다. 대학 대신 일찍 취업을 해서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었다. 큰 자산을 이루진 못했지만, 하루 세 끼를 해결할 정도의 경제력은 갖췄다. 부모로부터 진정한 독립은 결국 경제적 독립에서 시작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사회에 나와 보니 목표를 정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학교에선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다음 시험 100점 맞으면 핸드폰 사줄게” 같은 동기를 주곤 했는데, 이제는 모든 선택과 방향을 스스로 정해야만 했다. 그렇게 회사생활에 몰두하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주변에선 결혼식에 초대받는 일이 점점 많아졌고, 그럴 때마다 결혼이란 게 정말 좋은 제도일까, 한평생을 함께 산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러던 내게도 사랑이 찾아왔다. 불같이 사랑하고, 또 불같이 아파했던 시간들. 그 시간 속에서 흔들리고 울 때가 많았지만, 25살이 되던 해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의 옆에선 그냥 내가 나답게 있을 수 있었다. 억지로 맞추지 않아도 되고, 자연스럽게 나 자신이 되는 느낌이 참 좋았다.


그는 아이를 정말 좋아했다. 어느 날 “우리 닮은 아이가 있다면 어떨 것 같아?”라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상상을 하게 되었다. 그는 아이에게 신겨줄 운동화까지 상상하며 즐거워했다. "나는 아이가 뾱뾱 소리가 나는 운동화를 신은게 너무 귀여워 그 소리에 아이가 달려오는지 아장아장 걷고 있는지 알 수 있다잖아, 뾱뾱뾱 소리가 급하게 난다! 그러면 곧 넘어질 수 있으니까 달려가야해!" 라고 상상하는 그의 모습에 나도 같이 웃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그 상상이 현실이 되었다.(결혼과 출산은 남자의 의지라는데,, 맞는거 같기도?) 임신을 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땐 온갖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산부인과에서 첫 진료를 받고 나오는 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이제 단순히 남자친구도, 남편도 아니구나. 내 아이의 아빠구나.

그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자. 그리고 평생 행복하게 해주자." 이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고, 그 행복이 우리 아이에게도 닿길 바랐다.

한 아이를 키운다는 건, 단순히 배우자가 아니다. 결혼은 정말 신기하게도 가족이지만 정확한 타인이다. 어떠한 일이 있어서 너무나도 사랑했지만 이혼으로 남이 될 수 있는 사이지만, 아이의 아빠가 된다는 건 평생 내 아이의 아빠라는건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그렇기에 이 사람의 인생을 진심으로 응원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우리는 연인이었고, 이제는 배우자가 되었다. 그리고 곧 한 아이의 부모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 엄마가 된다는 게 낯설고 두렵기도 하지만, 함께 걸어갈 길이기에 용기를 내보려 한다. 우리 이야기가 시작된 이 순간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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