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떨림을 기록하며
며칠 전부터였다.
어린이집에서 엄마아빠에게 보여줄 무대를 준비한다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우리 아이.
집에서는 절대 알려주지 않는다. “엄마 비밀이야! 그날 봐야지~” 입술을 꾹 깨물고 귀여운 비밀스러움을 지키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어릴 적 기억이라는 게 다 또렷하지는 않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의 떨림이 담긴 장면들은 오래 남는다. 나도 그랬다. 학예회 준비하며 부채춤을 췄던 기억. 옆에서 함께 춤추던 친구의 이름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무대 뒤에서 두근두근 떨리던 마음만큼은 선명하다. 신기하게도 매일 함께 밥먹고 놀았던 친구 이름 세글자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가슴떨림은 여전히 기억난다.
엄마아빠가 왔는지 관객석을 힐끔거리던 순간, 눈이 마주쳤을 때 느껴졌던 안도, 그리고 동시에 ‘더 잘해야 해’라는 욕심. 순간 박자를 놓쳐 당황하며 무대를 망쳤던 작은 기억까지.
그래서 문득 생각했다. 우리 아이에게도 오늘이 그런 ‘평생의 기억’이 될까?
어린이집에서 3년 넘게 지내다 보니 친구들의 성장 또한 자연스레 함께 보게 된다.
“세온이가 엄청 컸네?”, “주하야, 와~ 진짜 많이 컸다!” 기저귀가 빵빵했던 아가들이 어느 날 꼿꼿이 걷고,
어느 날 단어를 말하고, 어느 날 문장으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참 많은 시간이 흘렀구나 싶다.
아이의 친구들도 어느새 정이 들어 우리 아이만큼이나 사랑스러운 존재가 된다.
우리 아이의 작은 세계를 함께 채워주는 소중한 이름들이니까. 그리고 그 아이들의 선함을 자연스레 믿게 된다.
오늘, 그 아이들이 모여 콩콩콩 준비한 무대를 보는데 나도 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졌다. 무대 커튼이 열리고,
우리 아이는 첫 등장에 관객석을 샅샅이 훑었다. ‘엄마 어디 있어?’ 내 눈을 찾으려는 그 작은 얼굴.
그리고 시작하기 전, 갑자기 “엄마 사랑해!!!” 하고 크게 외치던 목소리. 그 한마디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었다.
아마 학교 다닐 때 상장 받았을 때보다, 첫차를 뽑았을 때보다, 그 어떤 성취보다도 벅차고 기쁜 순간이었던 것 같다. 우리 애가 나를 불러줬다.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그야말로 공식 프로포즈였다.
이서는 앉아서 펜 잡고 공부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무대 위에서는 외운 대로 척척 해내며 꽤나 강한 집중력을 보여줬다. 오늘은 우리 이서의 숨겨진 달란트를 본 하루였다. 게다가, 멀리서 가족처럼 지내는 선주 언니와 석겸이도 와주었다. 이서에게는 ‘딸기 이모’와 ‘나무 삼촌’이다. 그들이 오자 이서는 친구들에게 자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 이모 왔어! 우리 삼촌도 왔어!!” 이서의 마음도 그들 덕분에 더 가득 찼겠지.
사실 재롱잔치라는 게 부모에게는 큰 감동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귀한 시간을 뺏는 건 아닐까 걱정도 했다.
그런데 함께해서 좋았다고, 행복했다고 말해주는 언니와 친구 덕분에 그 미안함은 접어두고 고마움만 마음에 담았다.
아이의 성장 과정을 보면서 가끔은 어릴 적 나를 본다. 부모가 된다는 건 아마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나를 다시 키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아이를 잘 키우는 방법은, 어쩌면 내가 더 잘 성장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길을 걷다 보면 아이는 자연스레 그 옆을 따라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오늘, 우리 이서야.
정말 너무 대견했고, 너무 잘했어.
너의 떨림, 너의 웃음, 너의 외침 하나하나
엄마 마음에 오래오래 새겨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