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엄마를 사랑할 때

by 양지드림

요즘 주변을 보면 결혼, 출산, 육아 이야기가 참 자연스럽게 오간다. 누군가는 결혼을 앞두고, 누군가는 아이 이름을 고민하고, 또 누군가는 밤마다 잠투정과 씨름한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내가 30대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연인에서 부부가 되고, 부부에서 부모가 된다는 것. 이는 단순히 역할이 바뀌는 일이 아니라 ‘사랑의 방식’을 배워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둘째 출산 이후 나는 육아휴직을 하게 되었다. 휴직이라 하면 ‘쉼’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육아휴직은 전혀 쉬는 시간이 아니다. 10년 가까이 직장인으로 살았던 나는 “지금이 아니면 못 할 것들”을 떠올리며 바쁘게 이것저것 시도하고 싶었다. 하지만 잊고 있었다. ‘육아’ 휴직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예상보다 큰 호르몬의 파도는 꽤 거칠었다.

아이를 품고 세상에 내보낸 여자의 몸은,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견디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이유 없이 마음이 울컥했고,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않는 것 같은 외로움이 밀려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 잘 해내고 있었다. 육아도, 집안일도, 나를 위한 공부도 어느 정도 균형을 잡아가며
‘멋있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스스로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문득 남편이 나를 너무 무덤덤하게 대하는 것 같아 서운함이 차오를 때가 있었다.


“내가 휴직이니까 당연히 육아를 맡는 거라고?”
“아니, 나 같은 와이프가 어딨냐고!”

속으로 수백 번 외치고, 마음은 복잡해졌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부부상담을 받기로 했다.관계가 나빠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서로의 언어를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상담을 통해 남편의 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남편도 요즘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좀 더 경제적으로 잘 해냈다면, 와이프가 일 안해도 될텐데…"


나는 반대로, '엄마'라는 단어에 가두는 주변, 엄마로서 뭔가를 내려놓으라는 메시지들이 불편하고 공격만 같았다.


남편은 내가 짊어지지 않기를 바랐고,
나는 나를 묶지 않기를 바랐던 것임을.


우리는 서로를 위하지만, 서로가 쓰는 사랑의 언어가 달랐던 것이었다.

결혼생활 5년간을 돌이켜보면 남편은 늘 나의 선택을 지지해줬다.
지방에서 본사 발령을 받을 기회가 왔을 때, 내가 조심스레 말했다.


“오빠… 우리 서울로 가도 될까?”

그때 남편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은지야, 해보고 싶으면 가자. 나는 남자니까, 재취업은 너보다 쉬울 거야. 너 하고 싶은 거 해. 나 걱정하지 마.”

그 말 한마디가 나에게 얼마나 큰 용기가 되었는지, 아마 나는 평생 기억할 것이다.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도, ‘엄마’라는 이름이 나를 전부 규정하지 않도록 늘 자유로운 나 자신을 지키고 싶었고, 남편은 그걸 허락해주고 응원해주던 사람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그리고 상담 마지막에, 우리 첫째 아이가 짧게 평가를 받았다. 선생님이 이서에게 "이서야 모래사장에 이서가 원하는대로 채워봐" 모래놀이에서 아이는 운동장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여기 친구들은 다 행복해. 다같이 즐겁게 운동회를 하고 있어~ 끝나면 집에 간대 집에 가면 더 행복해.
엄마 아빠가 지켜줘!”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조용히 뜨거워졌다.

부모가 서로를 사랑할 때, 아이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아이를 잘 키우는 첫걸음은 ‘좋은 부모’가 되려 하기 전에 서로에게 좋은 ‘부부’가 되는 것이었다.


“가정의 중심은 아이가 아니라, 부부이다. 사랑은 부부에게서 시작되어 아이에게 흘러간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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