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분
얼마 전 남편의 대학 동기 모임 사람들을 만났다. 이 모임은 유난히 특별하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결혼과 출산을 하게 된 경우가 많아, 자녀 양육과 결혼 생활이라는 인생의 가장 큰 변화를 함께 겪는 공동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동기들을 유난히 좋아해서인지, 나도 자연스레 그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며칠 전에는 남편과 그의 동기들이 “남자들끼리 여행을 떠나자”라며 집을 비우게 되었고, 나 역시 홀로 아이들을 돌보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같은 처지에 놓인 동기 아내들과 연락을 주고받다 보니, 우리 모두가 똑같이 독박육아를 앞두고 있었다. 결국 “이럴 바엔 같이 하자! 공동육아 가자!” 하며 슈퍼우먼 셋이 모이게 되었다. 아이 다섯, 엄마 셋. 남편들이 여행을 떠난 사이, 우리도 작지만 강한 연대를 이루었다.
아이들은 함께 뛰어놀며 즐거워했고, 비록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의외로 든든하고 풍성했다.
저녁이 되자 드디어 엄마들만의 ‘미녀들의 수다’가 시작됐다.
우리는 결혼한 지 평균 5년 남짓 되는 부부였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남녀가 만나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며 가정을 꾸려가는 과정. 열정적인 사랑에서 시작해 이제는 동반자, 연대로 이어지는 길 위에 서 있다. 때로는 치열하게 다투기도 했고, 서로를 달래기도 했으며, 함께 울며 버텨온 시간도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돌아보면, 이 모든 과정을 견뎌낼 수 있었던 힘은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준 것’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각 가정마다 다른 고민이 있었다. 누군가는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는 남편 때문에 지쳐 있었고, 또 누군가는 집안일을 잘하는 남편이지만, 집안일을 혼자서 다한다고 착각하는 남편 때문에 다른 의미로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다르면서도 닮아 있는 우리의 이야기를 통해 깨달았다.
가정마다 문제는 달라도, 부부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은 같다는 것을.
그 본질은 바로 ‘상대를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이다.
부부 사이에서 내가 더 힘들다고, 내가 더 불쌍하다고 자기 연민에 빠지는 순간 관계는 쉽게 무너진다. 남편의 고집이 힘들 때도 있지만, 그가 지친 어깨로 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뒷모습을 보면 “오늘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결국 나만이 그의 의지가 되어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 필요한 건 이기려는 태도가 아니라, 공감하고 한발 물러서는 지혜다. 성경에도 “사람이여, 네가 누구에게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나님께 구하라”(야고보서 1:5) 라고 말한다. 지혜가 있어야 사랑이 깊어지고, 지혜가 있어야 관계가 지속된다.
그날 우리는 목사님의 설교 말씀도 함께 나눴다. “남편을 휴대폰에 ‘고마운 분’이라고 저장해보세요.” 처음에는 다들 웃으며 “고마운 분? 그럼 줄여서 ‘고분’? 고분고분 해져라, 남편들아~” 하며 장난을 쳤다. 하지만 그 안에는 깊은 의미가 있었다.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고마운 분’이라는 글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감정은 쉽게 변하지만, 시선과 태도를 바꾸는 작은 습관은 관계를 지켜주는 힘이 된다.
성경은 부부에 대해 깊은 진리를 말한다. 창세기에는 여자가 남자의 갈비뼈로 지음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여자가 남자보다 위나 아래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남자와 나란히 서서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라는 의미다. 에베소서 5장에서는 남편에게는 아내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한 것처럼 사랑하라고, 아내에게는 남편을 존중하라고 말한다. 결국 사랑과 존중은 쌍방의 의무이자 은혜다. 남자는 아내를 위해 희생할 것을 요구받고, 아내는 존중과 지혜로 가정을 세우라는 부르심을 받는다. 상대를 바꾸려고만 하다 보면 결국 부러지고 상처받지만, 존중과 유연함 속에서 관계는 자라난다.
우리는 아직 서툴다. 엄마도, 아빠도, 아내도, 남편도 처음이기에 넘어지고 흔들린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성장하고 다듬어져 간다. 그리고 그 성장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할 때 더욱 깊어진다.
처음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어떻게 배우고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사랑이라는 단어를 배워가는 중이다. 열정적인 사랑도, 존경도, 연대도. 그리고 그 사랑을 통해 서로를 ‘고마운 분’이라 부를 수 있는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