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y or Cry

엄마가 꿈꾸는게 뭐 어때서

by 양지드림

꿈꾸는 게 뭐 별건가.
아니다. 별거다.

언제부터였을까.
세상 사람들이 나에게 더 이상 꿈을 묻지 않게 된 지 꽤 오래됐다.

친구들과 만나 나누는 대화도 대부분 비슷하다. 먹고사는 이야기, 그게 돈이 되느냐는 질문, “걔는 잘 산대”, “어떻게 그렇게 살지?” 같은 이야기들. 그 사이에서 누군가 문득 묻는다.

“그래서 너는, 너 삶에 만족해?” 나는 그럭저럭 만족한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나름 최선을 다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선택하며 살아왔으니까. 사실 ‘만족’이라는 단어가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도 잘 모르면서 “이 정도면 만족이지 뭐” 하고 스스로를 설득해왔던 것 같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보니 그 질문이 다시 돌아왔다.


그래서, 우리 아이도 나처럼 살았으면 좋겠어?

그건 아니었다. 나는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아이에게 대신 이루게 하려는 그런 열성 엄마는 아니다.

하지만 엄마가 되어보니 누군가가 손가락질하던 그 ‘열성 엄마’들이 단순히 욕심 많은 사람이 아니라는 건 이해가 됐다.


그건 아마도 자식을 사랑하는 방식이었고, 자기가 살아온 환경 안에서 터득한 가장 치열한 사랑의 형태였을 것이다.그러니 함부로 판단할 이유도, 쉽게 비웃을 자격도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내 아이.

누군가를 이토록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까지 응원해본 적이 있었나 싶다.

그래서 나는 내 삶보다 더 좋은 삶을 아이에게 건네고 싶어졌다.


“그래서, 아이가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는데?” 이 질문을 떠올리기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우리 이서와 은서는 말이야.

세상이 무대였으면 좋겠어.

왜 꼭 한국만이 일터여야 할까.
영어도 잘해서 달러를 벌어보는 경험도 해보고,
유학도 다녀오고,
생각의 크기를 국경 안에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어.

꼭 직장인이 아니어도 좋아.
자기만의 일을 하며
그 과정 안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나는 국영수를 잘하는 모범생보다

무언가를 하고 싶어서 스스로 계획을 세워보는 아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 안에서 동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으로 아이를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을 하고 나서 문득 멈춰 서게 됐다.

‘어… 이게 혹시 나의 결핍인가?’, ‘내가 그렇게 살고 싶었던 건 아닐까?’

누군가 말했다. Try와 Cry의 차이는 단 하나라고.


누구에게나 결핍은 있다. 환경이 달라도, 조건이 달라도 각자의 결핍은 존재한다.

어떤 사람은 그 결핍 앞에서 울고, 징징거리고, 세상 탓과 환경 탓만 하며 Cry를 선택하고, 어떤 사람은 그 결핍을 채워보고 싶어서 조금이라도 더 잘 살아보고 싶어서 자기만의 답을 찾으려 애쓰며 Try를 선택한다고.성경에서도 강력한 메시지를 주시지만 믿는 것조차 자유의지로 선택하게 하셨다고 했다.


내 삶의 자세를 어떻게 고민하고 어떤 방향을 택할지는 결국 나의 자유의지다.

아이를 잘 키운다는 건 어쩌면 나를 다시 키워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키우며 나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처음으로 배우는 기분이다.나는 나에게조차 관대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며 나 자신을 어떻게 아껴야 하는지도 조금씩 알게 된다.

누군가는 육아를 그저 너무 힘들기만 한 과정이라고 말하지만, 어쩌면 이 시간은 한 인간이 또 하나의 지혜를 배워가는 아주 깊은 성장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Cry 대신 Try를 선택해본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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