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발리 여행을 하며
아이와 함께 떠난 해외여행, 발리와 쿠알라룸푸르.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나의 안에는 늘 영어를 너무 잘하고 싶어 하는 외국인 하나가 살고 있는 것 같다. 가끔 그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린다. 너는 사실 에너지도 많고, 당당하고, 겁도 없고, 한국만이 전부가 아니라 세상이 얼마나 큰지 알았으면 좋겠어. 영어 하나만 잘해도 너의 삶은 정말 달라질 거야. 한 번만, 정말 한 번만 제대로 노력해보자고 말이다. 누군가는 “사람은 자신이 가장 자주 생각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했는데, 그 말처럼 이 목소리는 오래전부터 내 안에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자, 애써 미뤄두고 외면해왔던 갈망이었고, 그래서 아이들이 언어를 언어로 받아들이는 이 시점에 해외에서 살아보며 영어를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과 동시에, 나 역시 이 갈망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고 해결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자연스럽게 커졌다.
회사 생활을 하느라, 학원을 다니기엔 시간이 없어서, 육아를 하느라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공부를 미뤄온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행동하지 않았다고 해서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정말 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이 영어였고, 그래서 이번에는 첫째 아이의 손을 잡고 영어를 공부하는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가족들에게 선언했다. 한 달을 다녀오겠다고 말했지만 현실은 온 가족의 반대에 부딪혔다. 둘째가 너무 어린데 어딜 가느냐, 위험하다, 세상이 무서운 줄도 모른다, 남편은 일하는데 애 둘을 어떻게 케어하려고 가느냐는 걱정들은 사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영어 공부를 하려면 한국에서도 할 수 있지 않느냐는 말 역시 맞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내 안에는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고, 이번에 물러서면 나중에 누군가 한국 좋은데 왜 굳이 나가서 사느냐고 물을 때도 또다시 물러날 것 같았다. 아니, 이 작은 시작이라도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쨌든 내 인생에 자꾸 ‘happen’을 만들어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오는 게 아니라, 움직이는 사람에게 따라온다”는 말처럼, 집 안에서 꿈을 말로만 반복하는 것은 오히려 나를 더 답답하게 만들 것 같았고, 그래서 내 경제력 안에서 갈 수 있고 비교적 안전한 나라, 말레이시아를 선택했다.
사실 해외여행은 친구와 함께하거나 출장으로 다닌 적은 있어도, 나 혼자 그것도 한 아이의 보호자로서 떠나는 여행은 처음이었다. 비자나 입국심사 같은 건 거의 그게 뭐임 수준으로 시작했고, 와츠앱을 깔고 현지 유치원에 직접 연락을 해보고, 되지도 않는 영어를 번역기에 돌려가며 하나하나 묻고 알아보며 준비를 마쳤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단 하나, 하면 된다는 감각이었다. 해보지 않았을 때는 막연히 두렵기만 했던 것들이 막상 해보니 되는구나, 별거 아니구나 하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삶의 체감은 완전히 달라졌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지하철을 타고 걸어 다니며 아이를 등원시키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누군가는 특별한 이벤트가 없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나는 숙소에서 굳이 칵테일을 마시지 않아도 이런 삶을 내가 언젠가 살 수 있겠다는 상상을 하며 하루를 채워갔다. 현지 음식을 잘 못 먹는 나에게 몰이 많다는 사실은 큰 위안이었고, 어? 한국 음식도 파네, 파리바게트도 있고 베스킨라빈스, BBQ도 있구나 하며, 언젠가 실제로 살 수도 있을 해외 생활을 구체적으로 그려보던 그 시간들이 유난히 소중하게 느껴졌다.
첫째 아이가 현지 유치원을 다녀와서 한 말은 아직도 선명하다. 엄마, 얘네는 영어만 해, 내 말을 못 알아들어. 이서는 알아들었어? 소통 좀 했어? 영어만 하니까 도통 모르겠어. 그러다 이내 그래도 잘 버텼네, 그래도 재밌었어, 하고 웃었다. 몰 안에 있는 볼풀 놀이터에서 어떤 아이가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오자 비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이 떠오르지 않았는지, 엄마 엄마 비켜가 영어로 뭐야? 아 모르겠다, hey hey 빵빵! 하며 자기가 아는 표현 안에서 어떻게든 의사를 전달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 아이를 얼마나 많이 칭찬해줬는지 모른다. 이서야, 대단하다. 엄마도 비키라는 말 몰랐어. 그런데 언어는 완벽하게 말했느냐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걸 얼마나 잘 전달했느냐인 것 같아. 그 친구는 분명 이해했을 거야. 생김새가 달라도 친구고, 무섭지도 놀랍지도 않아. 그냥 이서가 하고 싶은 말 잘 전달해보면 돼. 그렇게 말해주며 나 역시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무조건 잘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내 수준에서 어떻게 표현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언어의 본질이라는 것, 나는 그동안 영어를 공부로만 여겼지 살아 있는 언어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문장이 틀려도 손짓 발짓을 섞고 번역기를 돌리며 소통하니, 신기하게도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쿠알라룸푸르 다음으로 향한 곳은 발리였다. 온 김에 휴양지까지 함께 다녀왔는데, 쿠알라도 발리도 한국인에게 참 호의적인 곳이었다. 한국 드라마를 줄줄이 말하고, 한국 연예인을 좋아하고, 그 이유만으로도 나는 환대를 받았고 호텔 프론트 직원들조차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세상에 운이 있어야 성공한다는 말이 있는데, 어쩌면 이렇게 많은 이들이 오고 싶어 하는 나라, 한국에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큰 행운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발리에서 만난 투어리스트는 발리 사람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인도네시아어가 아닌 영어로 수업을 받는데, 관광으로 먹고사는 직업이 80% 이상이기 때문에 영어는 곧 생계라고 말했다. 나는 한국에서 한국어만으로도 살아가는 데 큰 불편이 없었지만, 이곳에서는 영어를 못하면 삶이 곧바로 흔들린다는 점이 인상 깊었고, 그만큼 내가 얼마나 좋은 환경 속에 있었는지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작은 카페에서 만난 스무 살 또래의 친구들은 한국인을 만난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며 한국에 가보고 싶다는 꿈을 이야기했고, 나와 찍은 사진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며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다. 정말 많은 사랑을 받은 여행이었고, 이 사람들은 과할 정도로 손님에게 집중했고 친절은 기본이었으며 뭐든 다 해주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 친절은 생계일까, 서비스 정신일까, 직업 의식일까, 아니면 사람을 향한 사랑일까. 여행자가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 삶을 대하는 태도와 사람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됐다.
발리에서 만난 젊고 유능해 보이는 이 친구들조차 한국에 여행을 와보는 것만으로도 꿈이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내가 가진 환경에 감사하게 되었고, 그들에게 당신은 지금도 충분히 젊고, 당신의 잠재력을 믿으며 꼭 한국에 오길 바란다고, 분명히 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돌아왔다. 그런데 그 말을 하면서 문득 깨달았다. 이 말은 사실 나에게도 해줘야 하는 말이었다는 걸. 지금도 늦지 않았고, 충분히 내가 원하는 삶을 그릴 수 있으며, 그렇게 살 수 있다는 말. 아이와 둘이서 교감하며, 엄마도 처음이라 서툴고 두려웠지만 딸이 함께였기에 더 강해질 수 있었고, 엄마라는 이름으로 맞이한 그 처음을 함께했기에 이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다시 쓰는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