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북토크
지난 금요일은 하루 두 권의 책으로, 두 번의 책 모임을 가졌다. 첫 번째는 한 달에 한번 지니 씨와 둘이 만나는 모임으로 오후 2시 북토크를 나눴고, 두 번째는 저녁 8시 인문학향기충전소 온라인모임에서 북토크가 이어졌다. 지니 씨와 나눈 책은 이미예 작가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었고 인문학 모임에서는 정유라 작가의 ‘말의 트렌드’였다. 지니 씨와 대화할 곳을 검색하다 홀이 아주 넓고 각종 피겨와 예쁜 식물이 곳곳에 잘 가꾸어진 조용한 카페를 발견했다. 나와 지니 씨는 카페 선택에 만족해하며 차와 조각 케이크를 먹으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지니 씨는 언제나처럼 꼼꼼하게 읽은 책의 감동받거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지점에 색색의 띠지를 붙여 가지고 왔다. 나는 전자책으로 읽어 사진을 찍거나 조금 적어 갔는데 지니 씨는 나의 몇 배를 준비해 왔다. 꼼꼼한 사람이다.
‘달러구트 꿈백화점’이 인기를 끌고 2까지 진작에 나왔는데 이제야 읽게 됐다. 우선 물건을 파는 백화점에서 ‘꿈을 판다’는 상상을 하는 것이 신선했다. 주인공과 등장인물들 이름이 국적 불문인 것도 마음에 든다. 이런 건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 많이 써먹은 시스템인데, 동양인인데 사는 곳은 유럽인듯한 동네와 마을이라던지 이름도 뒤섞여 있는 거라든지 하는. 물건이 아니고 꿈을 판다. 그중에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꿈도 있다. 만약 살 수 있는 꿈이 있다면 나는 무슨 꿈을 사고 싶을까? 아마 내가 이루고 싶었지만 이루지 못한 소망의 꿈을 사고 싶을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자면서 꾸는 꿈과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고 하는 꿈은 다르면서도 비슷한 성질을 가졌을거 같다. 실제로 양자역학에서는 이 둘의 성질에 차이가 없다고 한다. 지니 씨는
“필요한 만큼만 꿈꾸게 하고 늘 중요한 건 현실이라 강조하시죠. 시간의 신이 세 번째 제자에게 바란 것도 딱 그 정도일 거예요. 현실을 침범하지 않는 수준의 적당한 다스림.”
이 책은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인생에서 지금 뒷골목을 배회하는 스산한 꿈을 꾸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말해 안타까웠다. 우리는 다음 달을 약속하고 작별하며 귀가하는데 서쪽 하늘에서 빨간 놀이 타고 있었다.
두 번째 책 ‘말의 트렌드’는 먼저 할 수 작가님이 강연을 했다. 음의 고저 차이가 나는 경상도 사투리가 정겹게 들린다. 고저 차이로 저절로 어떤 말은 강조가 되는 느낌이다. 처음에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는 요즘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들이 짧게 줄여서 쓰는 말의 설명인가? 했는데 그런 단편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왜 말을 줄여 쓰게 됐는지, 새로운 단어의 탄생 안에 숨어있는 문화 코드와 사람들의 감정, 언어에 나타나고 담기는 시대의 흐름 등에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고 이해하고 함께 고민하며 더 나은 말의 트렌드를 창조해 갔으면 하는 작가의 바람이 담긴 책이었다. 사실 줄임말을 조금 따라 쓰면서도 왜 이렇게 줄여, 이렇게까지 줄여야 돼? 생각을 많이 하기 싫어서 말도 줄이나? 유튜브의 2배속도 길다고 쇼츠가 나오는 그야말로 뭐든지 줄이는 세상이 돼 가는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많다. 작은애가 하는 말 들 중에 줄인 말과 은어가 많아서 말 좀 똑바로 하라고 타박 준 적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작은애는 반대로 나보고 새로 쓰는 언어 좀 배우라고 했다. 농담을 드립이라 하고 초, 중학생 철이 아직 안 든 애들을 ‘젠민이’라고 하는 등 대체 근거가 어디에 있는 말을 쓰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어떤 영역이 인증언어를 획득해 쓰이고 있는 것은 그 영역이 당대에 끼치는 영향력이 높아졌음을 시사한다고 했다. 이제는 한글학회나 국어대사전에서 언어의 공신력을 인정하는 시대가 아니고, 온라인 오프라인 공간에서 공감을 받은 말이 인정과 함께 급속도로 퍼져나가 쓰여지는 시대라는 말이다. 문해력도 중요하지만 밈해력(문화구조를 이해하는 힘)이 중요한 때라는 말을 강조한다.
언어도 유통기한이 있다. 따지고 보면 조선시대 쓰던 말을 지금 거의 쓰지 않듯 이제껏 써왔던 말만 계속 써야 한다는 법도 없는 셈이다. 변화에 멈칫하는 게 아니라 유연하게 바라보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쓰는 말의 향기와 온기는 고스란히 언상이 된다고 한다. 공감백배다. 사람은 자기가 쓰는 말만 쓰게 되어있다. 작가에게도 말은 생명과 같다. 한강 작가도 한 문장을 쓸 때 엄청나게 고민한다는 말을 들었다. 오에 겐자부로는 퇴고의 신이라 불릴 정도로 글을 다듬고 또 다듬고 새로움을 창조하면서 색을 입히는 과정을 되풀이했다고 한다.
작가는 부정적 감정에 매몰되는 말들은 순화하자라고도 말하고 있다. '발암캐릭터' 이런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와! 어떻게 이렇게까지 말이 세질 수 있을까 싶었다. 말이 참 무섭다. '독박육아', '전업주부' 등은 어감이 너무 세고 육아하는 사람이나 주부를 좁은 세계에 갇히게 하는 느낌이 든다. 육아를 온전히 책임진다고 혼자 다 뒤집어쓰며 사는 건 아니지 않은가. 분명 주변 사람들과도 연계를 맺으며 육아를 하는데 말이다. 전업주부라니 주부는 가정일 하는 게 전업인가? 직장을 안 다니는 것뿐이지 가정일만 하지는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지역사회와의 연계, 보수를 받지 않고도 주변에 도움을 주는 중요한 일도 많이 하는데 마치 가족만 바라보고 비서처럼 가정에만 매달린다는 의미가 느껴진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학교나 지역사회에서 직장에 다니지 않는 엄마들이 자율적인 모임을 만들어 자원 봉사하면서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거에 엄청난 기대와 평가를 보내고 있다. 누가 더 대단하는 차원이 아니라 맡은 역할이 다르고 모두가 일임을 수행하고 있다. 일찍이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 박사는 ‘21세기를 여는 대화’에서 주부들에게 사회가 한 달에 교수에게 주는 월급 정도를 지불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참으로 식견이 높은 사람이다. 월급을 주기는커녕 사회는 각종 세금을 걷어가느라 바쁘다.
독박육아를 '대박육아'라고 하면 어떨까? 인구도 점점 줄어 걱정이라는데 육아를 하는 건 사회에 대박을 터트릴 인재를 키우는 거니까 대박육아라고 해야 좋지 않을까? 전업주부를 '전천후우먼'이라고 하면 어떨까. 직장에 매여있지 않으니 전천후로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작가는 해시태그의 중요성도 놓치지 말라고 한다.
말과 글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다시 알게 된다. 시대의 감수성을 담은 언어를 이해하고 사용해나가며 주체성을 갖고, 잘 활용하며 창조해 가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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