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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인간과 유전자

by 쥬디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인 희로애락이 늘 오가는 경험을 하며 살아간다. 그 폭의 차이가 클 때도 있지만 이번 주만큼 컸던 적은 많지 않았다. 인문학향기충전소 작가님들과 공동 집필을 하며 모임이 여러 면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고, 괴롭히던 통증도 사라져서 기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엊그제 버스를 타고 이동 중에 큰애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어떡해요”

침통한 목소리가 들렸다.

“왜? 무슨 일인데?”

“준이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셨는데 병원에 늦게 가셔서 뇌사상태래요”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뭐?...”

할 말을 잃었다. 준이는 큰애와 가장 친한 친구이고 그 애 엄마와 나도 친하게 지내고 있다. 밥 먹고 노래방 간 게 얼마 전인데. 큰애와 준이는 불과 몇 시간 전에 둘이 이번 주에 만나면 뭐 할지 의논하고 있었다고 한다.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모른다는 말이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이다. 준이네 집과 우리 집은 공통점이 많다. 아빠들이 건설 쪽 일을 하고 큰애와 준이는 친구, 남동생들은 동갑, 준이 엄마와 나도 동갑이고 대화가 잘 통해 금방 친구가 되었다. 몇 달 전 남편이 뇌출혈이 온 적이 있어서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큰애는 준이와 전화를 붙잡고 울고 나는 자기 전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라 슬픔이 복받쳤다. 준이 아빠도 안타깝고 친구와 아이들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났다. 결국 어제 돌아가시고 큰애는 학교에서 돌아와 서둘러 준이에게 달려갔다. 장례식장에서 밤새고 온다며 나갔다.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를 묻고, 준이를 대신해 다른 친구들에게 연락하는 모습을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나는 오늘 일정을 마치고 오후 늦게 장례식장을 방문했다. 아침 일찍부터 돌아다녔더니 목이 뻐근하면서 피곤이 몰려왔다. 큰애가 검정 재킷을 입고 친구와 조의금 함 앞에 앉아 있었다. 이 어색함을 어떻게 표현할지. 준이와 동생이 방문객을 맞이하려고 나란히 서 있었다. 나는 향을 태우려고 초에 불을 붙이는데 손이 덜덜 떨렸다. 몸이 몹시 피곤한 신호다. 친구를 만나 꼭 안아주었다. 얼굴이 부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아 다행이었다. 밥을 먹는데도 손이 떨렸다. 내가 더 상태가 안 좋은 거 같다. 친구는 아침에 잘 다녀와라고 나간 남편과 이렇게 갑작스러운 이별을 하게 되어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한다. 금방이라도 들어올 거 같아 밤새 불을 켜놨다고 했다. 이별은 슬프다. 그것도 갑작스러운 이별이라니. 친구는 남편과 자주 트러블이 있었다고 한다. 준이도 아빠와 잘 맞지 않아 갈등이 있었다고 했다. 사이가 좋았으면 좋았기 때문에 슬프고, 사이가 안 좋았다면 잘 지낼걸 하는 아쉬움과 후회로 슬프다. 그렇게 어제까지 제정신이 아니었다가 오늘 정신을 차렸다고 한다. 현실이 슬픔에만 빠져 있게 놔두지 않는다고 했다. 남편이 하던 일 마무리 해야 하고 보험 처리등 할 일이 산더미라고 한다. 준이가 엄마 걱정 마시라고 돈 더 벌겠다고 한 말이 가슴 아프다며 아들들을 고생시킬 순 없으니 자신이 강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만나면 무슨 말을 어찌하나 했는데 내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묵묵히 들어주는 것 외에는. 이야기하는 사이 목은 더 뻣뻣해져 왔다. 친구는 다른 문상객들이 와서 말하다 일어났다.


이번에는 큰애와 준이가 나에게 왔다. 준이도 생각보다 씩씩했다. 큰애가 곁에 있어 너무 든든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힘들 때 친구가 곁에 있어 다행이라고 한다. 큰애가 그렇게 듬직해 보일 수 없다.


얼마 전 유시민의 ‘문과 남자의 과학공부’에서 유전자 이야기가 나왔다.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는 유전자 앞에 인문학적인 표현으로 이기적이란 말을 붙였지만 사실 유전자는 아무 감정이 없고 태어나라. 살아라. 죽어라. 이것만 수행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그 외 태어나서 기쁘다, 죽음을 맞이해서 슬프다,라고 감정을 느끼는 건 어디까지나 인문학적인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단순히 그것만 붙이는 것도 아니고 운명이네, 기적이네 등등으로 더 복잡하게 만들기도 한다. 엊그제 슬플 때 이 말을 떠올리니 묘하게 감정이 가라앉기도 했다. 그래도 수면 아래 있던 감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인간은 유전자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복잡 미묘한 존재다. 단순히 과학적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심연에 숨어있다가 연을 만나면 툭툭 튀어나오는 수많은 감정들을 어찌할 것인가. 그런 모든 상황들을 헤치고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 한다.


#이기적유전자 #이별 #희노애락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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