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와 미래에 독립을
날들이 지나간다. 날들이 다가온다. 날들이 그저 흘러간다. 오늘이 어제가 되고 내일이 오늘이 되어 눈앞에 펼쳐진다. 이월과 삼월은 어감이 완전히 다르다. 일월과 이월이 순삭 했다. 뇌 세포가 정신없이 받아들이다가 거의 다 걸러내고 아주 중요한 포인트만 저장한 채 과거로 포장해 놓는다. 순간 받아들이고 순간 포장하느라 정신없을 것이다. 진심으로 신경 쓰는 것도 건성으로 넘기는 것도 똑같이 지나간다. 흥미와 재미의 실체가 생명의 공명을 이루다가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아쉬움에 여운을 기억하려고 뇌세포가 애쓴다.
몇 년 전까지 애니메이션을 참 많이 봤다. 실사에서 표현할 수 없는 포인트가 재밌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오면 잠깐 누워서 유튜브 음악이나 영상을 볼 때가 있다. 어제 그동안 봤던 애니들의 ost가 나와 감상하며 여운을 떠올리고 있었는데 장면들이 그립지만 다시 보고 싶은 마음까진 들지 않았다.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 내용을 말하자 아들은
“엄마는 과거에 사로잡혀 있네요. 새롭게 재밌는 애니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데 그래요?”
라고 하면서 요즘 인기 있는 애니 몇 가지를 추천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문득 내 세포가 과거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다. 익숙한 거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생각은 과거의 재료를 가지고 현재를 마주하고 조심조심 미래를 준비하며 살아가기 바쁘다. 문제는 몸은 현재를 살고 있는데 마음은 언제나 과거에 있는 경우가 많다. 늘 과거 이야기를 달고 산다.
“내가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이제 몸이 말을 안 들어.”
“예전에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한 게 아직도 서운해. 용서가 안돼.”
“내가 왕년에는 이렇게 잘 나갔다고.”
“예전에 갔던 거기가 늘 생각나. 그땐 참 재밌었지”
이미 지나서 돌로 굳어져 화석이 되고 있는 과거이야기에 우리는 늘 목메고 있다. 화석을 파내고 확인하고 과거 속 이야기에 살을 붙이느라 현재의 시간을 보내버린다.
어제 여러 사람들을 만났는데 아직도 몇 달 전 몇 년 전 누군가에게 서운했던 이야기를 또 꺼낸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가기에 현재의 시간이 좀 아깝다. 멈칫멈칫 다가오는 미래는 어떠한가. 생각할 여유조차 없게 돼버린다. 거울을 보며 주름진 얼굴에 놀랄 때가 있는데 십 년 후를 생각하면 지금은 너무 젊은 걸지도 모른다.
오늘 드디어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이 한국에서 최초 개봉한다고 한다. 몇 주간 홍보동영상을 보며 기대가 커진다. 언론에서는 엄청나게 떠들썩하다. 아카데미상을 휩쓴 ‘기생충’ 작품으로 기대치가 대폭으로 상승해 있는 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과거 작품과 비교하며 보고 평가를 쏟아낼 것이다. 우리의 뇌는 늘 그런 식으로 작동하니까. 나는 최대한 이 작품 자체만 놓고 평가해보려 한다. 감독은 과거의 생각과 지식과 창의성과 영감으로 영화를 만들었지만 분명히 또 다른 미래를 만든 작품일 테니까. 어느 정도는 독립적으로 봐야 할 필요가 있다.
내일은 미리 봄을 만나러 간다. 버스 타고 한참을 가야 해서 갈까 말까 망설였지만 몸이 조금 고단해도 머리에 새로운 풍경을 들어오게 하고 오감을 봄으로 피어나게 하고 싶어 ‘광양 매화마을’을 간다.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에 좀 더 초점을 맞추며 걸어가고 싶은 3월을 사이에 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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