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갓파 쿠와 여름방학을’을 감상했다. 초등학생 ‘코이치’와 갓파 ‘쿠’의 우정을 담은 작품이다. 갓파는 일본의 요괴, 전설상의 동물 또는 미확인 동물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에는 요괴가 주인공인 작품이 많다. 오니(도깨비), 텐구(신사에 사는 요정) 등과 함께 갓파는 가장 유명한 요괴이다.
예전에 홋카이도 여행 갔을 때 온천마을 곳곳에 갓파 동상이 있었는데 여행자들이 오면 동상의 숫자 세는 것도 하나의 재미라고 한다. 거북이처럼 등껍질이 있고 팔다리가 개구리 같고 오리처럼 손에 물갈퀴가 있고 얼굴은 귀엽게 생기고 코 부리는 약간 작은 독수리모양이고 몸은 초록개구리처럼 무늬가 있고 지푸라기같은 머리카락이 있는 머리에는 물을 축여줘야 하는 접시 같은 게 달려있다. 이 머리접시를 자주 적셔줘야 산다. 사람처럼 서서 다니기도 하고 물속에서 헤엄치고 생선과 오이를 먹고 말도 한다. 재밌는 캐릭터를 만들어놨다.
사무라이가 존재하던 에도시대, 늪지를 논으로 개간하는 일을 맡았던 관리가 밤에 컴컴한 들길을 지나고 있을 때, 늪에서 자유롭게 살던 갓파 쿠의 아버지가 관리 앞에 갑자기 나타난다. 늪을 논으로 만들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데 놀란 사무라이가 칼을 뽑아 들고 그만 갓파 아버지의 손을 벤 후 죽이고 만다. 놀란 아들 쿠가 도망가다 지진이 일어나고 땅속으로 떨어져 화석이 되었다가 수백 년 후 현재 시대에 코이치가 우연히 강가에서 발견해 집에 데리고 와 깨어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만화적 상상력이 기발하다.
갓파 쿠와 코이치 가족은 금세 친해지고 즐겁고 신나는 여름방학을 보낸다. 쿠는 가족을 지키는 개 ‘아찌’와도 가까워진다. 쿠의 몸집은 작달막하지만 씨름을 잘한다. 코이치는 쿠에게 씨름을 배워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들을 혼내주기도 한다. 옛날과 다르게 사람과 건물과 차가 너무 많아 어질어질한 세상에 쿠는 놀란다. 쿠의 소문이 나 매일 같이 언론사 사람들이 집 앞에 대기 중이어서 가족들은 곤란한 지경에 이른다. 코이치의 도움으로 인간 사회에 잘 적응하고 있지만 쿠는 갓파다. 갓파는 늪에서 살아야 한다. 코이치는 쿠의 친구들을 찾아주려고 먼 여행을 떠나 강에 다다른다. 자신이 살던 강을 만나 쿠는 자유자재로 수영을 하고 코이치도 함께 물속에 뛰어드는데 이때 물속과 밖을 넘나들며 함께 자유자재로 수영하는 모습이 압권이다. 원초적 물속에서 둘은 모든 시름을 잊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내가 수영하고 있는 듯한 기분으로 행복해졌다. 파란 여름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그려있고 시리도록 아름다운 여름날 풍경이 펼쳐진다.
결국 쿠는 친구를 만나지 못하고 집에 온다. 코이치는 쿠에게는 미안하지만 쿠를 자랑하고 싶어 온 가족이 함께 티브이에 나가게 된다. 거기서 쿠는 사무라이에게 죽임을 당한 아빠 팔을 화석처럼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서 놀라게 되고 팔을 빼앗아 달아나다가 쫒는 사람들을 피해 가장 높은 빨간 탑에 올라간다. 초고층이라 아슬아슬 보는 내내 손발이 떨렸다. 슬픔에 잠긴 쿠가 간절함을 외치자 말라버려 위험에 처한 쿠의 머리를 적시는 비가 내리고 쿠는 희망을 느끼면서 사람들의 도움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는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해 있다. 쿠에게 자기가 살고 있는 곳으로 오라는. 가족과 헤어지고 코이치는 쿠를 택배상자에 넣어 쿠가 원하는 곳으로 보내준다. 쿠를 담은 택배상자가 차에 실려 멀어져 갈 때 코이치는 뛰어가며 이별의 눈물을 흘린다. 그러다가 살짝 미소를 짓는다. 사랑하는 쿠에게 진정 원하는 길을 찾아주었다는 안심의 미소다. 쿠가 도착한 곳은 오니가 사는 오키나와다. 쿠는 아직 때 묻지 않은 자연에서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두 시간 동안 애니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람과 동물의 우정(요괴이지만), 아이들 간의 집단 따돌림, 자연파괴로 인해 동물들이 살 곳을 잃는 것, 대중들의 지나친 관심의 쏠림, 아이들의 진실한 우정 등이 균형을 잃지 않고 사실적이면서 폭소를 자아내기도, 쏠쏠한 재미를 유지하기도 하면서 감동을 주고 있다.
여동생 투정 부리는 것도, 엄마의 아들에 대한 사랑과 티브이에 나오는 자신의 모습이 나이 들어 보인다고 표현하는 것도 미화시키지 않고 리얼해서 좋았다.
"우리 요괴들은 거짓말 안 해.
거짓말하는 건 인간들뿐이야."
-쿠의 명언이다-
쿠와 코이치가 이별하는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 어릴 때는 누군가와 헤어지는 게 하늘이 무너지는 거처럼 슬펐다. 감수성이 더 풍부하고 여려서였을까? 그 시절 이별의 감정이 떠오르면서 더 슬프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봐도 좋지만 어른이 보면 생각할 거리가 풍부한 애니메이션이다. 갓파 쿠를 너무 사람처럼 만들어놓은 게 조금 우스꽝스럽기는 하지만 어차피 사람과 소통해야 이야기가 진행되니 어쩔 수 없다. 봄의 시작이지만 영화를 보니 어디선가 여름 냄새가 나는 거 같다. 기후변화로 여름이 무섭기도 하지만 태양의 열기를 품은 자연의 향기가 가득한 여름이 좋다.
갓파 쿠가 물속을 자유롭게 헤엄치는 거처럼 오늘 하루도 이번 주도 자유자재로 걸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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