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에 읽었던 책을 중년인 지금 다시 읽으면 감회가 다르다. 중요하게 닿았던 포인트도 다르고 안 보이던 게 보이기도 한다. 음악도 그렇다. 그만큼 세월이라는 무게 때문일까? 이번 기나긴 추석 연휴는 조용필의 노래와 함께 보냈다. 10월 6일 저녁 광복 80주년 대기획 가왕 조용필 ‘이 순간을 영원히’ 콘서트가 방영됐다. 지난 9월 6일 고척돔에서 열린 콘서트였다. 3시간 가까이 영원한 우리들의 가왕 조용필은 변함없는 목소리와 체력과 기량으로 18,000명의 관객과 추석날 어린아이부터 8.90대 어르신까지 한 거실에 앉은 전 세대에게 환희와 감동을 안겨주었다. 이틀 후 8일 저녁 콘서트를 준비하기까지의 과정과 에피소드 그리고 미방영된 공연 장면과 방영된 장면이 11시까지 이어졌다.
갑자기, 그것도 정말 오랜만에 조용필 콘서트를 보면서 나는 많은 생각에 빠져들었고, 그날 이후 유튜브에 올라온 콘서트 다시 듣기를 반복했고, 입에서는 조용필 노래를 흥얼거리고, 노래방에 가서 지인들과 신나게 조용필 노래를 불렀다. 유튜브 댓글에는 조용필 찬탄의 내용이 도배되었고, 감격과 감사의 글이 끝없이 이어졌다. 공감 버튼을 꾹꾹 눌렀다.
문득 음악이 주는 힘이 이렇게 클 수 있나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콘서트 티켓은 그냥 팬이 아니라 몇십 년에 걸친, 혹은 조용필의 노래로 삶의 위로와 희망을 얻은 사연의 주인공들이 KBS에 글을 보내 채택된 사람들 위주로 초대됐다고 한다. 소위 찐 팬이다. 어떤 팬은 부푼 꿈을 안고 갔던 영국에서 자신의 커리어가 인정받지 못하고 좌절을 겪고 있을 때, 조용필의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 괴롭고도 험한 이 길을 왔는데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라는 ‘꿈’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위로를 받아 일어설 수 있었다는 사연을 보내 티켓을 받아 열 시간이 넘는 비행기를 타고 콘서트를 보러 왔다. 어떤 팬은 일본에서 일을 하고 있을 무렵 머리가 너무 아파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었는데 뇌종양이 크게 자리하고 있어 긴급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좌절의 늪에 빠졌을 때 병원에서 들었던 조용필의 노래가 희망을 주었고, 수술로 잘 움직일 수 없는 얼굴근육을 움직이려고 조용필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유튜브에 올리는 등 필사적인 노력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는 감동적인 사연도 있었다. 작년 12월부터 이 프로를 기획했던 총 담당 피디도 가왕 조용필의 콘서트를 준비하고 개최하면서 감격해 울먹이며 가왕이 건강하게 오래도록 노래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으로 조용필과 그의 노래에 대한 깊은 애정을 어떻게 분석할 수 있을까?
문학 철학 역사 미술 음악 중에 사람 마음을 최고로 빠르게 사로잡는 인문학은 음악이 아닐까? 양쪽 귀로 들어와 뇌의 파동을 일으킨다. 한순간에 끝나지 않고 들을 때마다 아니 시간이 지나면 무게가 더해져 파동이 더 커진다. 음악이 지닌 힘은 굉장하다. 사람들이 가왕을 보는 것은 마치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보는 거 같다. 콘서트장과 티브이 앞에 모인 사람들의 에너지가 오직 한 사람에 집중된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사람들의 충성은 마치 어느 종교의 교주를 보는 느낌이다. 조용필과 그의 노래를 영웅으로 추대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모아진다.
내가 느꼈던 젊은 시절 가왕의 노래는 그저 듣기 좋은 유행가로 인기가수 유명가수 정도로만 생각했다면, 이번 콘서트에서 70대 중반의 노장 가수로 등장해 부르는 한 곡 한 곡의 가사와 멜로디는 마음을 뭉클하게 하면서 이 정도로 멋진 가사와 멜로디였나? 그 시대에 이런 내용으로 곡을 썼다고? 등등 보이지 않던 게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게 들렸다. 음악은 보통 말 그대로 소리를 재료로 하는 시간예술로 박자, 가락, 음성 등 갖가지 형식으로 조화하고 결합하여 목소리나 악기를 통해 사상 또는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이라고 정의한다. 고전음악인 클래식이 가사가 없는 걸 생각하면 가사가 있는 음악이 나온 역사는 길지 않다. 가사에 온갖 인생의 애환과 사랑을 담아 노래하는데 멜로디와 가사의 조화가 중요하다. 조용필의 노래가 국민가요가 되고 시대가 변해도 전 세대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몇 가지 생각해 보았다.
첫째는 그의 꾸준한 음악 사랑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노래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십 대 시절 기타를 치면 그걸 빼앗아 부서뜨리는 아버지의 만류에도 굴하지 않고, 가출해 음악 인생을 선택했다. 한때의 애정이 아니라 진심 어린 음악 애정으로 연이어 히트곡을 발표했고 쉼 없이 연습하고 수많은 음악을 듣고 음악성을 키우며 세계를 확대해 왔다. 팝, 발라드, 트로트, 락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었다. 가사도 단순히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만이 아닌 ‘바람의 노래’에서는 인생에서 우리는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깨달으며 해답이 사랑이란 걸 전해주는 메시지를, 다빈치의 ‘모나리자’의 차가운 미소에서 안타까운 사랑을 캐치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는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가슴을 서사시와 구슬픈 멜로디로 마음을 사로잡았고, ‘허공’에서는 구수한 트로트 멜로디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태양의 눈’에서는 락과 오페라적인 요소로 노래에 웅장함을 더했다. 젊은 날 그는 시상식에서 ‘국민가요’를 만들겠다고 말한 대로 평생 약속을 지켰고, 사람들은 노래방에서 그의 노래에 기대어 애환을 풀었다.
둘째는 멜로디와 가사의 절묘한 조화가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즉 대중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정확히 그걸 줄 수 있는, 줄 줄 아는 가수다. 그 역시 삶의 아픔을 겪은 사람으로 ‘동고’ 할 줄 아는 가수다.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대신 노래해 주는 가왕의 가사와 멜로디에 자기를 투영하며 마치 ‘어쩜 이렇게 내 마음을 잘 알까’ 생각하며 빠져들었다. 빠져들 수밖에 없게 하는 위력을 갖고 있다.
셋째 가왕이 되는 비결은 연습 또 연습이란 걸 온몸으로 보여 준 진짜 가수다. 사람들은 뛰어난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저 분야의 천재야, 유전자가 달라.’ 등의 말을 종종 한다.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저 사람이 가진 재능이 특출 나서 자신은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으니 ‘천재’라는 범접할 수 없는 말을 붙여 자신과 구분 지으려고 하는 것과 두 번째는 노력도 하기 전에 자신의 평범함을 정당화시키려는 뜻도 조금 내포되어 있다. 나도 젊을 때는 그랬다. 재능이 없으면 일찌감치 손을 떼는 게 상책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가고 자녀를 키우면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천재’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게 되었다. ‘천재’란 엄청난 재능을 포함한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 연습과 노력의 대가가 결국 천재가 된다는 점이다. 조용필은 평생 동안 노래를 만들고 부르고 무대에 나가기 위해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노력한 천재’였다. 그는 음악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스스로 음악의 세계에 뛰어들어 배우고 부딪히며 자신의 음악세계를 창조해 온 행동하는 음악인이었다. 본무대 나가기 전 리허설을 보통 가수들은 한두 번에 끝내는데, 이번 콘서트에서 가왕은 10번을 했다고 한다. ‘위대한 탄생’ 세션 멤버들은 연습하면서 가왕에게 매번 혼난다고 말한다. 소리를 정확히 듣고 있어 바로 지적이 날아온다고 한다.
“오직 잘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무대에서 노래하다 죽는 게 꿈이에요”
가왕이 하는 이 말은 그저 멋있어 보이는 게 아니고 진정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현재까지 20집의 앨범을 발표하고 변화를 거듭하고 받아들이고 앞으로도 음원을 계속 발표하겠다는 가왕은 연습과 노력의 천재가 분명하다.
비가 계속 내려 회색빛이 도는 기나긴 명절에 한줄기 밝은 빛으로 전 세대에게 행복과 감동과 환희를 느끼게 해 준 가왕 ‘조용필’. 그는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인생에 대한 ‘사랑’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멜로디에 담아 전해준 태양과 같은 존재다. 태양은 미지의 세계까지 찾아 노래를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