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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디 Sep 29. 2024

새로운 만남과 사피엔스 그리고
백일장

연이은 도전의 기록

낮인지 밤인지 모른 채 자고 있는데 아들이 문을 열고 한마디 한다.

“벌써 주무세요? 저녁도 아직 안 먹었잖아요”

시간을 보니 밤 11시가 넘었다. 그러고 보니 요 며칠 아들과 같이 밥을 먹은 적이 없다. 서로 시간이 안 맞기도 하고 내가 밖으로 돌아다닌 일이 많아서이다. 


어제는 새로운 인연을 만난 특별한 날이었다. 언니들과 6월에 책과 강연 에서 하는 비즈인큐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평소 내가 존경하는 작가의 책을 가져갔다. 그날 만나는 작가 중에 책을 주고 싶은 분이 나타날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마침 그날의 주인공이었던 한 작가님의 감동적인 강연을 듣고 감격해 기꺼이 책을 드리고 함께 사진을 찍고 나왔다.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왔는데 얼마 후 놀랍게도 그분에게 문자가 왔다. 책의 내용도, 책을 받은 것도 감동이라고 했다. 그 마음에 감사하며 문자를 주고받다가 그분의 딸이 9월에 외국에서 나오니 그때 같이 만나서 대화하자는 약속까지 했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 9월이 되어 우리는 드디어 어제 만남을 가졌다. 나는 큰언니와 나가고 그분은 딸과 함께 나와 충무로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났다. 웃음 가득 미소를 지으며 카페에 들어오는 작가님과 딸은 어쩐지 오래 알고 지내온 듯한  친근한 느낌이었다. 싱가포르에서 온 딸은 그 나라 유명커피와 애플에서 나오는 볼펜과 애코백등의 선물을 우리에게 가득 건네주어 깜짝 놀랐다. 애플 회사에 다닌다고 했다. 예의 바르고 순박하면서도 진솔함속에 국제감각을 갖춘 인상을 받았다.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하다고 했다. 작가님은 딸이 13살 때 혼자 싱가포르로 유학을 보내면서 오로지 사랑과 믿음을 가득 보냈다고 한다. 딸은 엄마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혼자 자신의 인생을 씩씩하게 개척해 왔다고 한다. 두 분의 이야기에 나와 언니는 연신 감탄을 하며 들었다. 한 시간 이상 감동과 감격의 대화로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우리는 딸이 다시 한국에 들어오는 12월에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나와 언니는 기쁘고 설레는 마음을 한참 동안 주고받았다. 좋은 만남은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작가님의 딸에게 받은 선물꾸러미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저녁에 인문학향기 모임에서 내가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 두 번째 강연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거의 한 달간 이 책을 읽으며 빅 히스토리에 대한 작가의 참신하면서도 대담한 시각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그가 말하는 ‘상상의 질서’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나 책에서 그려지는 상상의 질서를 무심코 넘기지 않았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처음 읽을 때는 내용이 조금 어려워 쉽게 페이지를 넘기지 못해 시간이 걸렸고, 두 번째는 눈에 들어오면서 이해했지만 방대한 양을 정리하는 게 결코 쉽지 않았다. 25분 내에 마쳐야 해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요약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리면서 요즘 피로가 겹쳐선지 오래 앉아 있으니 허리가 뻐근했다. 자주 강연하는 사람들이 다시 한번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어쨌든 미리 캔버스로  만들어 나의 시각으로 강연을 무사히 마쳤다. 두껍고도 어려운 책에 과감히 도전해 본 날들이었다. 도전 자체로 나를 칭찬하고 싶다. ‘호모데우스’와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도 읽어보고 싶다. 그리고 유발하라리가 함께 고민해 보자고 하는 사피엔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사색하게 되었고, 선악을 떠나서 성장과 발전이라는 타이틀로 현재까지 도전에 대한 응전의 가시밭길을 헤쳐온 인류의 역사에 한 사람의 사피엔스로서 애정과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경기장 입구


오늘은 인천 축구전용 경기장에서 열리는 ‘새얼 백일장’에 참여했다. 몸의 찌뿌듯함으로 갈까 말까를 망설이다 얼른 쓰고 오자는 마음으로 차를 몰았다. 오후 2시 시작으로 거의 한 시간 일찍 여유 있게 참석했는데도 사람들이 경기장 입구부터 벌써 좌석에 앉은 사람까지 인산인해였다. 초중고학생들과 교사들 부모들 일반부 어른들 모두가 참여하는 그야말로 인천 글쓰기 최대 축제의 장이었다. 어느 초등학교는 전교생이 참석했다고 한다. 경기장 사이사이 잔디밭에 앉아 돗자리를 깔고 소풍 온 거처럼 음식을 먹고 있는 가족들이나 단체들이 많았다.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때 시에서 하는 백일장에 참여한 이후 처음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몇 십 년이 어느새 흐르다니. 난 아직 어린 소녀 같은데. 저들의 눈에 비친 나는 중년의 아줌마이다. 따가운 햇빛을 피해 3층 좌석에 자리 잡고 여유 있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대한 경기장 위로 파란 가을하늘이 펼쳐져있었다. 내 뒤로 여고생 둘이 앉았는데 수다가 재잘재잘 이어진다. 도서관에서 몇 번 마주친 아저씨 두 사람이 바로 내 앞 좌석에 앉는 게 아닌가. 그중 한 사람은 도서관에서 열리는 작가 강연 때 커다란 목소리로 질문을 자주 해서 시끄럽다고 생각했었다. 그분은 역시 별 내용 없는 이야기로 너털웃음을 웃더니 갑자기 가방에서 칼과 사과를 꺼내 한번에 깎아 칼로 작게 쪼개어 위험하게 칼과 함께 사과를 입에 가져간다. 같이 온 옆 사람에게 먹어보라는 말도 없이 혼자 잘도 먹는다. 사과를 다 먹고는 바로 삶은 계란을 꺼내 우적우적 먹기 시작한다. 소풍을 왔나 보다. 먹는 중간에 ‘아유’ 하는 특유의 한숨 비슷한 소리를 한 번씩 내뱉는다. 뒤에서 지켜보자니 웃음이 나서 혼났다. 

2시에 개회를 하고 교육감과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그리고 국회의원들 소개가 이어지고 오늘의 글쓰기 주제가 공개됐다. 학년별로 주제가 달랐다. 일반부는 ‘나만의 기념일’ ‘택배상자’ ‘산책’이었다. 이 세 가지 중 무엇을 쓸까를 생각하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여유롭게 생각하다가 30분이 지났고 ‘나만의 기념일’로 정해 우선 가져간 노트에 써 내려가는데 생각보다 내용이 길어졌다. 5시까지 3시간이 주어져서 여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노트에 다 쓰니 4시였다. 그늘이 졌던 좌석에 따가운 해가 비치기 시작해 옮기기도 뭣해서 모자와 양산으로 가리며 신경 쓰며 쓰느라 집중이 안 됐다. 안 되겠다 싶어 일어나 그늘이 있는 곳으로 가니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원고지에 옮겨 적는데 평상시 노트북에 쓰던 버릇이 들어 글씨가 빨리 써지지 않고 손에는 힘이 들어가고 조급한 마음이 부담을 증가시켰다. 잠시 내가 왜 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을 보니 사람들이 거의 빠져나가 마음은 더 급해지고 글의 정리는 순조롭지 않았다. 종료 5분 전이라는 멘트가 나와도 완성까지 조금 무리가 있었다. 마침내 5시가 되자 빨리 내라고 독촉 멘트가 나와 엉성한 마무리를 한 채 일어나고 말았다. 만족스럽지 못한 마음으로 원고를 내고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가을 햇살이 더 따갑게 느껴졌다. 

새얼백일장은 축제


작년 백일장에서 지인이 대상을 받았다고 엄청나게 자랑을 하던 게 그럴만하다고 느껴졌다. 막상 와서 수천 명의 사람들을 직접 보고 주어진 주제로 정해진 시간안에 완성된 글을 쓰는 게 쉽지 않음을 확인하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참여했다는 거에 만족해야 할 듯하다. 집에 오니 온몸이 쑤신다.      

열심히 글을 쓰는 사피엔스들


연이은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내일은 조금 느긋하게 산책하듯이 독서를 즐기고 싶다. 


#좋은인연 #사피엔스 #유발하라리 #새얼백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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