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와 삶에 대한 기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삶의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수용소에 있었던 사람들은 자기 경험을 글로 쓰거나 이야기할 때, 당시 가장 절망적이었던 것은 얼마나 오랫동안 수용소 생활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한다. 우리는 언제 석방되는지를 몰랐다. 내가 있던 수용소에서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무의미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심리학자는 강제 수용소에서의 이런 삶을 ‘일시적인 삶’이라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시작과 끝이 있다. 학교에 다닐 때는 언제까지나 학생일 줄 알지만 졸업이라는 끝이 있고 직장도 늘 다닐 거 같지만 퇴사해야 될 시점이 오고 스스로 계획한 일이든 다른 사람이 계획한 일에 참여하는 일이든 늘 시작과 끝이 있다. 끝이 아쉬움과 섭섭함이 따르지만 뭔가 해냈고 마쳤다는 시원함이 있고 끝이 있기에 견딜 수 있다. 작가의 수용소 생활도 결국 끝이 있었지만 그곳에 있을 때는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인 삶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finis라는 라틴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완성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이루어야 할 목표를 의미한다고 한다. 수용소에서의 삶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세울 수가 없고 미래를 대비한 삶을 포기한다.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과 더불어 정신력도 상실하게 된다고 한다. 몇 달 전 잠깐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남편이 병원에 입원해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다. 매일 경과가 좋아져 나는 빠른 시일 안에 일반병실로 갈 거라고 믿었고 간호사도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 해서 가족들에게도 말하고 다녔다. 그런데 시티를 찍고 결과를 바로 말하지 않고 의사가 바쁘다는 말만 하면서 하루이틀 미루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답답해 재촉을 했지만 일반병실 가기에는 좀 더 지켜봐야 하니 기다리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가는데 언제라는 명확한 날짜를 알 수 없게 되자 반짝이던 희망이 갑자기 내동댕이쳐진 느낌이었다. 무기력감이 입맛을 잃게 하고 외로움이 크게 느껴지고 조그만 일에도 서운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날씨는 갑자기 추워진 데다 집을 가지 못하고 배회하는 자신이 서글프기까지 했다. 그게 목소리로 흘러나왔나 보다. 아버님이 궁금해서 전화를 걸었는데 나도 모르게 힘 빠진 목소리로 대답을 하자 이제는 다 같이 걱정 속으로 빠져들었다. 며칠 후 일반병실에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 이후에 퇴원하라는 말을 들을 때보다 더 기뻤다. 아버님이 ‘아이코 살았다. 살았어’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걸 잊을 수 없다. 나의 경험은 아주 작은 거였지만 이 부분을 읽으면서 깊이 공감이 갔다. 기약을 알 수 없는 긴 투병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고통은 가히 짐작하기 어렵다.
*살아야 할 이유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작가는 수감자들을 치료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들이 처한 끔찍한 현실에 어떻게든 힘을 주려했다. 모든 충고와 격려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대답은 ‘나는 내 인생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어요’였다고 한다. 작가는 정말 중요한 건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잇는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우리가 곧 삶인 거 같지만 별개이다. 삶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게 있기에 우리는 삶에 응답해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우리와 삶은 일방이 아니고 쌍방이다. 삶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나: 삶아 너는 나에게 무얼 기대하니?
삶: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적절히 조율해서 살아가주길 바라.
나: 좋은 조언이야. 해야 할 일만 하면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의무감으로 경직된 모습만 나타나 어떨 때는 인상이 무섭기까지 해. 하고 싶은 일만 하면 기쁘고 신나지만 주변을 소홀히 하게 되니 왠지 주변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고 불균형한 느낌이 들어.
삶: 맞아. 흐르는 물처럼 살아주길 바라. 흐르는 물은 언제나 자신과 싸우고 있기 때문에 정화하는 힘을 가진대.
나: 흐르는 물이라! 멋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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