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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디 Dec 09. 2024

죽음의 수용소에서 1

(MAN’S SEARCH FOR MEANING-의미를 찾는 인간)

이 책의 명성을 오래전부터 익히 들어왔다. 저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이야기라 궁금하기도 했지만 왠지 끔찍한 이야기만 열거해 놓은 게 아닐까 싶어 선뜻 읽지 않고 있었다. 이번에 미니강연을 준비하면서 기존에 읽었던 책으로 할까? 아니면 새로운 책에 도전할까? 생각하며 밀리의 서재를 기웃거리다가 문득 이 책이 나를 끌어당겼다. 차례를 보니 수용소 생활만 기록된 것이 아니라 그곳 체험을 바탕으로 한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로서 인간의 심리에 대한 분석과 새로운 이론을 풀어놓은 글을 보고 눈이 번쩍 뜨이는 심정이었다. 타인을 납득시키고 설득시킬 수 있는 것 중 자신의 체험만큼 확실한 것이 있을까? 물건을 사려고 할 때 후기를 보는 것도 다 그런 이유이다. 책을 읽을 때도 리뷰를 보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처럼.    


  

 수용소라는 헐벗은 자기 생명 외에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절박한 환경에서 굶주림과 수모 공포 분노의 감정들을 느끼고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는 삶을 작가는 견뎌내면서, 산다는 것은 곧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며 살아남으려면 시련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삶에 목적이 있다면 시련과 죽음에도 반드시 목적이 있을 것이다. 인간문제의 가장 심오한 의미에 초점을 둔 극적인 경험담과 거기서 얻은 깨달음을 로고테라피라는 이론을 만들어 치료가 된 예를 소개하면서 인간이 가진 존엄성과 잠재적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단순한 학파에 인간이라는 복잡한 대상을 공식처럼 대입하는 테크닉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 존재의 내면의 깊이를 통찰하는 위대한 작품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놀란 건 이 작품이 문학적으로도 아주 뛰어나다는 점이다. 단순히 사실을 기록하고 이론을 뒷받침하는 글이 아닌 문학적 표현들과 철학적인 이론이 씨실과 날실처럼 아주 견고하게 짜여있어 깊은 공감의 샘이 파이고 그곳에서 간접 체험을 하는 기분에 빠져들게 한다.       



“겁먹은 듯한 기적 소리가 기분 나쁘게 울렸다. 마치 파멸에 빠질 운명에 처한 이 불행한 짐꾸러미들을 불쌍히 여겨 도움을 청하는 울부짖음을 하늘로 올려 보내는 것 같았다.”     

수용소로 끌려가는 처절한 운명을 이렇게 표현했다.      



작가 이름은 빅터 프랭클이다. 빅터(Victor)는 영미권에서 쓰이는 남자 이름이고 승리자를 뜻한다.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의 빅토르도 불어로 승리자다. 이름대로 간다고 빅터 프랭클은 승리자가 되었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승리자뿐 아니라 심리학에서도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이론에서 더 나아가 로고테라피(의미를 찾는 치료요법)를 창안해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그들을 구한 심리학의 승리자다. 이 책의 독일어 원제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 예‘라고 말하네(한 심리학자가 수용소를 경험하다)였는데 영어로 번역할 때 (MAN’S SEARCH FOR MEANING)라 고쳤다고 한다. 1997년 집계에 의하면 이 책은 미국 내에서만 9백만 부가 팔리고 전 세계적으로 천 2백만 부가 나갔다 한다. 영어 번역판 서문을 쓴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 교수 고든 올포트 교수는 이 책을

 ‘우리 시대 가장 의미심장한 심리학적 운동에 대한 서론’

이라 칭했다. 처음 출간했을 때는 ‘1부 강제 수용소에서의 체험’과 그곳에서 체험한 것에서 도출할 수 있는 교훈을 요약해 놓는 ‘2부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 두 가지의 내용이었다. 그러다 1984년 개정판에서 비극적인 과거로부터 얻은 교훈에서 미래에 대한 낙관이 샘솟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3부 비극 속에서의 낙관’이라는 제목의 글이 추가되었다.      



작가는 인생에서도 승리했다. 1950년 오스트리아 심리치료의학회를 설립하고 초대회장을 역임하고 미국의 하버드, 피츠버그등에서 방문교수로 초빙되고 1997년 돌아가시기 전까지 세계 여러 대학에서 29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노벨평화상 후보까지 지명되기도 했다고 한다. 67세에 비행기 조종사 면허증을 획득하기도 했고 자서전을 쓰고 죽기 바로 직전 철학박사 학위 논문을 기초로 책을 내는 등 32권의 책을 저술했고 34개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작가의 인생 자체가 운명과 싸우며 삶의 의미를 찾아 배우며 투쟁했고, 그걸 바탕으로 직접 환자를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로서, 책을 통해 작가로서 타인의 삶을 구한 위대한 승리자였다. 어쩌면 작가는 절망에 허덕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최악의 환경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수용소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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