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의도, 범결정론에 대한 비판, 비극 속에서의 낙관)
죽음의 수용소에서 4(파이널)
(역설의도, 범결정론에 대한 비판, 비극 속에서의 낙관)
로고테라피에는 여러 기법이 있다.
역설 의도
-그중 ‘역설 의도(paradoxial intention)' 기법은 두 가지 사실을 염두에 두고 개발된 것이다. 마음속 두려움이 정말로 두려워하는 일을 생기게 하고 지나친 주의 집중이 오히려 원하는 일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이다. 땀 흘리는 것에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땀을 흘릴 것이라 생각하는 예기불안이 정말로 땀을 많이 흘리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이순환 고리를 끊어버리고자 나는 그에게 땀을 흘리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일부러 사람들에게 얼마나 땀을 많이 흘리는지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충고했다. 일주일 후 그가 찾아와서는 “전에는 땀을 한 바가지밖에 안 흘렸지만 이제는 적어도 열 바가지는 흘리게 될 걸”이라고 생각하니 4년 동안 시달린 공포증이 단 일주일 만에 낫게 되었다고 말했다. 태도의 반전으로 두려움이 있던 자리에 대신 반대되는 소망이 들어가 불안이라는 돛대에서 바람이 빠져나가게 된 것이다. 유머감각으로 자신을 분리시킬 수 있는 인간의 기본적인 능력은 역설 의도라는 로고테라피 치료기법이 적용될 때마다 발휘된다. 거리두기 능력으로 자기 병을 자신에게 분리시켜 볼 수 있게 된다.- 본문 중에서
예기 불안이란 미리 불안함을 느끼는 걸 말한다. 코로나가 한참 유행하던 봄에 잠실에서 약속이 있어 마스크를 쓰고 간 적이 있다. 잠실 석촌호수 공원에 도착하자 흐드러진 벚꽃을 구경하는 인파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나는 그때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마스크 써도 코로나에 걸릴지 몰라 ' 식당에 가서 는 마스크를 빼고 밥을 먹고 있는데 건너편 테이블에서 기침하는 소리를 들었다. '저 사람 기침이 공중에 떠다니다가 내가 코로나에 걸릴지도 몰라 ' 하고 생각했는데 진짜 그날 저녁부터 마치 예리한 칼에 베이는 듯한 목의 통증이 시작되면서 결국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다. 그때 동행했던 언니는 걸리지 않았다. 몇 년 전 잠깐 배운 피아노로 학원에서 아이들 틈에 끼어 미니연주회를 한 적이 있다. 어설픈 실력으로 60명 이상의 부모들 앞에서 연주할 생각을 하니 얼마나 떨리던지 리허설 때 손가락이 부들거려 건반이 제대로 처지지 않았다. 무대에 나가기 전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 떨리는 건 당연하지 틀려도 어쩔 수 없잖아. 이 나이에 시도해 보는 게 어디야. 그 부모들을 다시 보는 것도 아니고 그냥 즐기고 내려오자 ' 그러자 어떻게 되었을까? 4분 정도 되는 임영웅의 ' 사랑은 도망가 '를 연주했는데 단 한 군데도 틀리지 않고 손가락은 부들거리지도 않고 멋지게 마지막 음을 누르자 '와'하는 함성과 박수소리가 터져 나와 깜짝 놀랐다. 일어나 인사하며 보니 까탈스러운 원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개박수를 치고 있었고 자녀들을 보러 온 부모들은 모두 일어나 박수를 치고 있었다. 어떤 엄마는 눈물을 흘리면서 감동받은 얼굴로 서있었다. 마치고 나오면서 처음 보는 엄마들이 나에게 찾아와 '너무 잘 들었다. 감동이었다. 감사했다 '등의 말을 하고 갔다. 역설 의도를 접하면서 이 추억이 생각났다.
범결정론에 대한 비판
-인간은 조건 지워지고 결정지어진 것이 아니라 상황에 굴복하든지 아니면 그것에 맞서 싸우든지 양단간에 스스로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존재이다. 인간은 어느 순간에도 변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거대한 인간 집단의 행동을 통계적으로 분석한 자료를 통해 얻은 사실 뿐이고 개인의 특성은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채로 남아있다. 인간은 자신을 더 나은 쪽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이다. 스타인호프(빈에 있는 정신병원)의 도살자라 불리던 J박사가 있었다. 나치가 안락사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때 그는 단 한 명의 정신병자도 가스실에서 도망가지 못하게 했다. 전쟁이 끝나고 빈에 있는 병원에 내가 돌아왔을 때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루비앙카 감옥에서 방광암으로 죽기 전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사람에게 위안을 주었고 가장 높은 수준의 도덕적 차원에 도달해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어떻게 감히 인간 행동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가. 인간 정신의 메커니즘이나 역동성을 예측하는 노력은 할 수 있지만 인간은 정신을 넘어선존재이다.-
본문 중에서
우리는 가까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을 아주 잘 안다고 생각하며 산다. 이제껏 해온 모습으로 쉽게 추측하고 판단한다.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있는 거처럼 훤히 보인다고 예측한다. 그런데 늘 반전이 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시던 엄마가 '난 절대 혼자 못살아 '하시며 동생가족과 함께 살게 됐다. 만나면 같이 사는 불편함을 호소해서 독립하시라 했지만 외로움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에 결정을 내리고 당당히 독립하시더니 노래교실등을 혼자 찾아다니고 친구들을 사귀어 오가며 아주 즐겁게 사시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절대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다. 인간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렵다. 인식하고 있는 데이터로 '저 사람은 저럴 것이다 '라고 판단하는 건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우리는 쉴 새 없이 오류를 범하며 살고 있다. 어제도 지인을 만나 대화하는데 자신과 마음이 맞지 않는 어떤 사람을 모든 사람이 안 좋게 생각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갔다. 그래서 나는 아주 무례한 사람인가 보다 생각했다. 저녁에 지인이 말했던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온화하고 따듯한 목소리로 전화 줘서 고맙다는 말을 해 살짝 어리둥절했다. 나도 내 안에 무엇이 더 있는지 모른다. 하물며 타인을 함부로 추측하는 건 과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에 대해 범결정론이 아니라 범가능성, 범변화성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비극 속에서의 낙관
-훌륭한 사람들이 소수인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도 언제나 소수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나는 소수의 반열에 합류하려는 도전 의지를 본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지금 아주 좋지 않은 상태에 있고 우리 각자가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더욱더 나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경계심을 갖자. 아우슈비츠 이후 우리는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됐다. 그리고 히로시마 이후 우리는 무엇이 위험한지 알게 됐다.-
인간만큼 잔인하면서도 자애로운 존재는 없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사람을 학살하면서도 바로옆에서 가족들과 화목하게 살았던 독일 장교 루돌프 회스가 주인공인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보면 싫어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빅터 프랭클 작가가 평생 동안 체험하고 연구해서 내놓은 로고테라피는 정신 치료를 다시 인간 중심적인 것으로 돌려놓는데 엄청난 기여를 했다. 이 책을 읽으며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마주하며 사유해 보는 시간을 보냈다.
이께다 다이사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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