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
정보 네트워크의 초기에는 비둘기의 다리에 쪽지를 보내는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하였다. 이후 기독교에서 틀리거나 잘못되거나 의심되거나 하는 내용에 대해 스스로 자정작용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환경이 있었다. 현대의 프란치스코 교황도 과거 교황에 비해 월등히 개방적이며 과거사에 대해 인정하는 것으로 볼때 크게 다르다고 한다.
정보에서 무오류성에 대해 의심하는것 자체를 반영으로 보며 소련 당시에도 당이 정한것에 이의를 제기하면 고문, 심하면 사형까지도 당했다고 한다. 그 결과 소련 뿐만 아니라 중세의 마녀사냥 당시 수많은 사람이 무고하게 희생되었고 저 자가 마녀다! 거나 사탄과 내통하고 있다는 등의 아무런 근거도 없는 정보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수용할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과학계는 끊임없는 자정작용과 잘못된게 있으면 지속적으로 고치고 수정하고 아무리 과학계에서 뜬금없고 터무니없고 말도 안되는 황당한 주장을 논문으로 가져와도 비웃음이나 학계퇴출, 심하면 해고까지 되지만 그래도 고문, 사형까지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후대에 비웃음을 받던 내용이 추후 정설로 인정되기도 하며 이것이 과학이 발전하는 이유이다. 특히 잘못했다고 해도 개인탓이 아닌 조직이 책임을 진다는 구조이다. 뉴턴이 시간은 절대적이다고 주장하였지만 이를 아인슈타인이 시간은 상대적이다고 뒤엎은 예를 들어서 그렇다고 한다.
소련 당시 폐쇄적인 구조로 인해 정보 네트워크가 매우 제한적이었고 스탈린의 말에 어느 누구도 거역할수 없었다. 심지어 스탈린의 사망조차도 살릴수 있었는데도 괜히 살려서 눈이 떠지면 그 의사조차 사형당할수 있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함부로 그를 대할수 없었다고 한다. 그 덕에 경제는 매우 비효율적이고 품질은 떨어졌으며 해당하는 문제에 제기를 한다는것 자체를 금기시 했다. 의문을 던지는 순간 즉시 굴라크로 끌려가기 마련이다. 아무런 죄가 없어도 당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굴라크에 끌려가는것이 중세시대의 마녀사냥과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모든것이 질서를 위해 통제되었으며 80년대가 되자 이미 소련의 고위 지도자들은 전부 고령이 되어 서구의 자본주의 사회에 전혀 따라갈수 없을 지경이 된다. 인텔이나 도시바 같은 회사가 애플이나 소니에 공급하면서 자유시장경쟁으로 인해 혁신이 일어나지만 소련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소련이 세계최초로 만든 가정용 컴퓨터는 이미 미국에서 1100만대나 보급되어 있었다. 한 비행사가 스페인 내전 당시 참전하면서 실전경험이 우수한 베테랑이었으나 스탈린에게 기체의 성능에 문제가 있다고 제기하자 그는 사형당하면서 소련의 조직이 매우 경직적일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군대 역시 창의적인 전략,전술보다는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는게 제일 안전하다고 여겼다. 괜히 쓸데없이 독단적으로 행동해봤자 생존해도 끌려가서 굴라크 행이거나 아니면 사형을 면치 못했을것이니 말이다. 그에 반해 미국 같은 서구권에서는 스리마일처럼 사고가 터졌을때 언론사 한쪽이 침묵한다고 해도 다른 언론사가 보도하게 되어 결국은 시간문제로 귀결되게 된다. 한쪽으로만 열려있지 않기 때문에 숨길래야 숨기기가 매우 어려운 구조라서 가능하지만 소련에서는 한쪽 방향으로만 통제되어 있어서 체르노빌 당시 이미 사고가 났는데도 당은 어떻게 해서든 틀어막을려고만 했었고 그 기간동안 계속 방치하고 있다가 스웨덴에서 이상이 감지된 이후가 되서야 인정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