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되돌아 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
그런 질문을 종종 받는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요?', '다시 어려진다면 몇 살로 가고 싶으세요?' 모두 과거의 어느 시점을 묻는다. 그럼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상당히 오묘한 맛의 추억들을 머릿속으로 되뇌이는데 사실 가장 가고 싶은 특정한 시점이 있다면 '고등학교 졸업식 날' 정도일 것 같다. 이유가 무엇일까? 지긋지긋하게 끝도 없던 공부에서 해방이 된 느낌이라서? 아니면 그제서야 진짜 어른이 된 것 같거나 젊었던 시절의 패기 왕성하던 내가 그리워서? 그것도 아니면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그 때의 열정이 그리워서 일까?
질문을 조금 바꿔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당신이 다시 돌아가고 싶은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비슷한 질문같지만 이렇게 질문을 받았다면 내 대답은 하나의 시점이 아닌, 조금은 광범위한 내용을 포괄하고 있지 않을까. 내 생애 행복했던 순간. 그런 순간을 떠올리자면 '다시 그런 시간이 돌아오기는 할까?'싶어 지금도 마음이 쿵하고 내려 앉는 기분이다.
생각해보면 나의 행복했던 순간은 너무도 많지만 굳이 예를 들자면 이러하다. 가을 낙엽이 질 무렵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한들거릴 때 춘추복으로 나온 체육복을 입고 토요일에 학교가던 날, 체육복 안으로 져며드는 바람이 기분 좋게 시원하던 그 순간. 저녁에 삼겹살을 구워먹고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김치치즈볶음밥을 해주던 순간. 몇 달을 연습한 곡을 멋지게 무대위에 올리던 순간. 생일이라고 친구가 직접 만든 생일케잌을 주며 깜짝 이벤트를 해주던 순간. 조깅하다 멈춰선 풍경이 유난히 여유롭고 아름다운 순간. 괜찮다는 위로를 들었던 순간. 엄마 아빠를 위해 요리를 하고, 그 음식을 맛있게 드시는 부모님 입가의 미소를 본 순간, 등.
많은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행복은 참 별 것 아닌 것 같다. 어떤이에게 삶의 행복이란 멋지게 차려입고 좋은 음악이나 전시회를 보러가는 순간일지도, 혹은 긴긴 웨이팅을 기다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또 다른이에게는 버스 정류장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순간일지도, 또는 그저 누군가의 무릎을 베고 토닥토닥 잠을 청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참 식상한 말이겠지만, 그러고보면 행복은 우리 주위에 널리고 널렸다.
그래. 그러나 추억속의 그 어느 순간이란 되돌아 감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때의 감정이 변치않고 그대로일 수는 없겠지. 살아가면서 잊혀지기도 하고, 흐려지기도 하고, 변색되기도 하며 해지기도 하겠지. 돌아가고 싶은 때를 꼽으라 할 때, 그 행복했던 순간들이 더 아련하고, 때로는 애절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아마도 지나갔던 과거의 그 어느 찰나속에 존재하는 그 어떤 느낌이기 때문아닐까. 행복의 소용돌이 중심에서 숨쉬고 있었던 그 가슴벅차게 아름다웠던 시간을 그렇게 귀중한 시간이었음을 모르고 지나쳤던 나의 어리석음을 결국 알게 되었기에. 그 행복을 다시 살게 된다고 해도 그 순간을 처음 살았던 내가 느끼는 그것과는 또 다름으로.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떠나보냈던 그 모든 순간들이 참 애잔하게 다가옴으로.
먹먹하게 흘려보내는 순간일지라도 나는 내가 살아왔던 그 행복했던 매순간들의 느낌이 좋더라. 이러한 찰나의 순간들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그 추억이라는 나만의 시공간도 나는 좋더라. 그래서 나는 나의 오늘도 행복이라는 커다란 몽글거림 속의 한 조각일 것이라 생각해본다. 오늘 내가 느꼈던 가벼운 즐거움이나 소소하게 웃음지었던 일들, 존재만으로도 따뜻했던 배려를 아무런 조건없이 받았던 순간이나, 조금은 모자랐던 것 같은 나의 바보스러움까지도. 그대에게도, 나에게도, 그런 행복한 찰나의 순간들이 많았으면 한다. 언제든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그 때 그 가을 바람이 다시금 나를 스쳐지나간다면 잠시라도 살포시 떠오르는 그 때 그 찰나의 행복했던 느낌으로 오늘을 다시 살아갈 힘이 생길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