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나일 수 없는 나의 모습을 받아들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시절을 한참 보낼 스무살 초중반 무렵이 되서야 나는 비로소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많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가족 안에서의 나, 친구들 사이에서의 나, 내가 원하는 나, 그리고 다른 환경에서의 나. 모두 다른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선뜻 그 중 어느 것 하나를 선택할 수 없는 기로에 서있는 내 모습이 암담했다. 심지어 이 모든 ‘나’들은 들쭉날쭉 제 멋대로 살아가는 독립된 개체들인 것 같았다. 나는 왜 하나일 수 없을까.
그 질문 주머니를 나는 한참 차고 다녔던 것 같다. 그러다 우연히 하나하나 찬찬히 나의 모습을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는데, 양파껍질처럼 겹겹이 쌓여 있는 ‘나’로 포장된 가장 안쪽에는 어린 아이 한 명이 웅크려 울고 있었다. 그 어린 아이는 상처와 새살이 어지럽게 뒤덮여 있는 그런 벽들속에 갇혀 있었는데, 그 벽들은 그저 가볍게 긁힌 곳도 있었지만, 꽤나 깊숙히 움푹패여진 생채기가 있는 곳도 있었고, 어떤 곳은 새살이 돋기는 커녕 아직도 피를 철철 흘리며 찢겨져 있는 곳도 있었다. 그 벽들에 뒤덮여 이 어린 아이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울고만 있었다. 그런 나의 가장 진실된 모습을 보고나니 그제서야 내 자신을 다독일 힘이 생겼다.
그 때부터 였을까. 나는 하나일 수 없는 나의 모습을 받아들였다. 결국은 그 모든 모습속에 내가 있었으므로, 그리고 나는 그것을 보았으므로. 그리고는 웅크려 울고 있던 나를 일으켜 그 벽을 하나하나 보수하며 다져나갔다. 가벼운 상처에는 연고정도로, 큰 생채기에는 밴드까지 붙여가며. 쉽지 않았고, 사실 끝이 없는 작업이라 주기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나를 꾸준히 다독이며, 고치며, 그렇게 데리고 사는 중이다. 그렇게 살다보니 웅크려 울던 아이는 이제 가끔 힘차게 걷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는 아이로 성장했다.
글쎄. 그 질문 주머니가 언제 다시 커질지는 모르겠지만, 행여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난다해도 그 전처럼 오래 가지고 다니지는 않을 생각이다. 지금은 그래도 그 때보다 조금 더 빨리, 능숙하게 상처들을 돌보는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나의 작은 기대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왜 하나일 수 없을까?’ 라는 내 질문에 이 아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답을 알려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색깔 그대로, 나의 모습 그대로, 결국은 그 모든 새살 돋아나는 상처들까지도 그저 하나의 ‘나’였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