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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도레 Feb 11. 2022

옥탑은 구름적 위치를 가진다

서울특별시 하늘동 구름로 30-9 옥탑


시선을 올려 세상을 수직으로 바라보면 저 까마득한 하늘 위엔 오로라가 피는 열권이 있다. 그 밑에 있는 중간권과 성층권을 지나 우리는 대류권에 속하는 곳에서 발을 붙이고 살아간다. 구름은 어디에 있을까? 구름은 우리가 복작복작 살아가는 이곳과 눈이 닿을 수 없을 만큼 높은 저곳 사이에서 유랑하듯 존재하고 있다.


@pixabay


옥탑방은 분명 보통의 주거 형태와 차별점이 있다. 지상과 친밀하게 붙어있는 1~2층 높이의 주택도 아니고, 3~4층 정도의 흔하디 흔한 네모 건물 안에 안정감 있게 들어가 있지도 않다. 하지만 저만치 뻗어서 키를 자랑하는 고가의 아파트와는 더더욱 거리가 있다. 지상과 떨어져 아주 적당하고 오묘한 높이에서 세상을 조망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온갖 만물을 까마득하게 내려다볼 수 있을 만큼 콧대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옥탑에 살다 보면 현실의 소리들과도 적당한 거리감이 생기게 된다. 윗집과 옆집이 없어 타인의 생활소음도 잘 들리지 않을뿐더러 5층 정도의 높이라 거리 위를 바쁘게 지나가는 자동차와 현대인들의 소리와도 떨어져 있다. 심지어 어떤 순간은 너무나 조용해서 현실 감각이 사라질 때도 있다.


그렇다 보니 옥탑은 이 세상과 살짝 분리된 어딘가에 붕 떠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고 덩그러니 존재하는 그런 느낌 말이다. 그래서 문득 옥탑이 구름적 위치를 가진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너무 낮지도 높지도 않은 곳에, 현실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오로라 같은 이상도 아닌 곳에 존재하는 구름.


그런 위치가 나는 마음에 들었다. 어딘가에 속하지 않고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씨름하는 지금의 나랑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그런가 보다. 너무 멀지 않게 딱 한 발치 정도 떨어져서 세상과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과 자유로움을 지향하는 것도 닮았고 말이다.


이 유유자적한 구름과 비슷한 공간에 있다 보면 세상을 보는 시각도 잠시나마 구름과 같아질 수 있다. 거리에 서있을 때 보다 훨씬 더 작게 보이는 건물과 사람들을 옥상에서 내려다보며 여유롭게 관찰하기도 하고, 고양이의 동선을 따라 눈을 움직이며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하기도 한다. 담담하고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방 안에 있을 땐 이리저리 뭉쳤다 헤어지는 구름들을 닮은 상상들을 하며 자유롭게 보내기도 하고, 시간을 느리게 쓰며 애정을 갖는 일을 하기도 한다.


장단점들에 대해 미리 알아본 후 옥탑으로 이사했지만 막상 살아보고 나니 내가 몰랐던 매력들이 더 많은 장소인 것 같다.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고, 젊을 때 살아봐야지 또 언제 살아보겠냐고 생각하며 입주했던 과거의 나는 나름 괜찮은 선택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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