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움과 부담스러움 사이
내가 사는 5층 옥탑방의 바로 밑층엔 주인집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살고 계신다. 처음 만나던 날, 친절하게 배려해주시는 모습이 가식적이거나 형식적으로 보이지 않아 조금 놀랐다. 사람을 볼 줄 안다고 스스로 자신하는 편은 아니지만 악덕한 집주인 유형은 아님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삿짐 박스에 둘러싸여 방 정리를 하던 나에게 고생이 많다고 떡을 챙겨주셨는데 그날 저녁엔 4층 집에 초대해 입주 기념 식사를 대접해주기도 하셨다. 종종 먼저 정답게 안부를 묻고 말을 걸어주기도 하시는데 꼬박꼬박 존댓말을 써주시기까지.
그동안 참 다양한 음식들을 나누어주셨다. 동짓날 팥죽, 해물파전, 돼지고기 김치찌개, 잡채 등. 요리 바보인 내가 함부로 할 수 없는 요리들이었다. 게다가 어느 날 문을 열어보면 택배가 내 방문 앞에 있기도 했다. 4층에 철문이 있어 그 앞까지만 내 택배가 배송되는데 나보다 먼저 발견하시고는 가지고 올라와 주신 것이다.
사실 이사 직전에 살았던 나의 첫 자취방의 집주인, 그러니까 내가 인생에서 처음 접한 집주인은 아주 칼 같고 철저한 성향의 소유자였다. 얼뜨기 자취 초보생이었던 나는 "아 서울 집주인은 이런 느낌이구나." 무의식 중에 생각하게 되었다.
5층 전체에 원룸이 꽉 들어차 있고 신경 써야 할 사람도 많으니 그렇게 철저하게 계약자로만 대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조금 딱딱하긴 했지만 나도 서로의 사적인 영역에 침범할 일이 없는 상태를 좋아하기에 집주인과의 그런 관계가 나름 마음에 들었다.
반대로 현재 집은 1~4층까지 여러 명이 살 수 있는 널찍한 가정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아이스크림 한 스쿱 뜬 것처럼 나 혼자 사는 옥탑이 얹어져 있는 형태이다. 다른 거주자들과 다르게 나는 유일하게 월세를 내는 자취생이고 나름 살기 빡센(?) 환경인 옥탑에 살다 보니 더 신경을 써주시는 걸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물론 원체 인간적이시고 정이 많으신 분들이기에 다른 이웃들도 잘 챙기신다.
문제는 내가 철저하게 사적이고 지독한 개인주의자라는 것. 나는 집에서 쉴 때는 관계망에서 일절 벗어나 완전히 독립되어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옥탑을 찾은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개인적인 시간과 공간에 파묻혀있고 싶은데 나의 안부를 궁금해하고 무언가를 챙겨주시는 분들이 계시니 사실 다소 부담감이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지난번 집주인 같은 스타일이 더 맞았는지도.
부담스럽다는 것이 꼭 싫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나에게 친절하면 나도 웃으며 친절하게 대하고, 마음 쓰신 만큼 나도 마음이 가게 되니 신경 써야 할 관계망이 생겨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오히려 나도 차갑게 내치는 스타일은 못 되고, 한 번 관계가 생기면 성의를 담다 보니까 관계를 형성하는 일이 마냥 가볍지는 않다. 그래서 이렇게 에너지를 쓰는 사회적 활동을 집에서는 더더욱 멈추고 싶었다 (물론 아무 이유 없이 혼자가 편한 것도 있다).
한낱 세입자 주제에 말이 많다고?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그리고 이만한 집주인을 만난 것도 감사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저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사람의 고충에 대해 한번쯤 토로하고 싶었다.
"요리 챙겨주시는 것, 택배 옮겨다 제 방 앞에 두시는 것 다 감사하지만... 저는 껍질에 쏙 들어간 달팽이 마냥 조용히 살고 싶군요!" "Leave me alone!" 외치고 싶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