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과 성호는 결혼식을 올린 그 해, 겨울에 첫 아이를 품에 안았다.
경험은 없어도 새벽녘, 다리 사이로 흘러내린 무색의 액체가 양수라는 사실을 정은은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출산 가방을 미리 챙겨 두었지만 며칠 집을 비워야 한다는 생각에 청소와 빨래를 서둘렀다.
집안일을 끝내고 짐을 들고 집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정은은 '난 힘 한 번 딱 주면 순풍 나을 것 같아!'라며 호언장담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꼬박 12시간의 진통에도 자궁문이 열리지 않아 결국 제왕절개를 하게 되었고, 마취가 덜 깬 정은은 곁에 앉아 있는 친정 엄마에게 “엄마, 아기 예뻐?”라고 묻고는 대답도 듣기 전에 다시 잠에 빠져 들어 버렸다.
일주일 뒤, 집으로 돌아왔다.
둘이 나선 집은 셋이 되어 돌아왔다.
정은의 엄마는 들통 한가득 미역국을 끓이며 딸의 몸조리에 정성을 쏟았다.
한편 첫 손주 얼굴이 궁금해 견딜 수 없던 시부모님은 곧장 집으로 오고 싶어 했다.
정은의 엄마는 '시부모님이 계시면 네가 어떻게 편히 누워 있니?'라며 날짜를 미루고 싶어 했지만, 이미 오겠다고 마음먹은 분들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어머님, 저희 집에 오셔도 되는데 제가 몸조리 중이라 식사 챙겨 드리는 것도 어렵고.. 드실 것도 미역국밖에 없어서.."
정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어머니가 환하게 답했다.
“우리 미역국 좋아해~”
그 말을 옆에서 들은 정은의 엄마는 분통을 터뜨렸다.
"다른 집들 이야기 들어 보면 며느리가 손주 낳았다고 시부모가 별별거 다 해다 주고 사다 주고 하던데 너희 시부모는 그런 것도 없어!"
출산한 며느리를 챙기지는 않더라도, 몸조리 중인 며느리에게 밥상을 받을 생각을 어떻게 하냐며 정은의 엄마는 퍼붓듯 화를 냈다.
정은의 시부모님은 결국 직접 키운 늙은 호박을 트럭 한가득 싣고 오셨다.
스무 개는 족히 넘는 호박을 정은과 성호는 물론 정은의 엄마까지 품에 안고 나르느라 진이 빠졌다.
정은의 시부모님은 정말로 정은을 위해 친정 엄마가 끓여 놓은 미역국을 이틀 동안 함께 먹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정은은 “몸조리는 글렀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은의 산후조리는 병원에서 퇴원해 집에 돌아온 그날 저녁, 단 하루가 전부였다.
며칠 뒤, 정은의 엄마가 딸의 집을 찾았다.
베란다 한편에 가득 쌓여 있는 늙은 호박 더미를 보고는 정은의 엄마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 많은 호박들을 다 어쩌라고.. 보통은 즙을 해서 가져오지, 누가 저걸 통째로 들고 와서 직접 내서 먹으라고 하니.."
보기만 해도 속이 답답한 호박들을 치워버리고 싶었던 정은의 엄마는 결국 건강원 친구에게 부탁하여 전부 호박즙으로 만들어 버렸다.
정은의 엄마는 호박즙 한 봉지를 뜯어 정은의 입에 들이밀며 말했다.
"호박즙 내리는데 돈이 얼마가 들어갔는 줄 알아! 아까우니까 싫어도 그냥 먹어!"
하지만 정은은 호박즙이 도저히 삼켜지지 않았다.
결국 그 많은 호박즙은 시댁으로 보내졌고 시부모님은 늙은 호박이 간편한 호박즙이 되어 돌아오자 반기는 눈치였다.
“너네 시부모, 호박즙 내는 데 돈 들어갈까 봐 그 많은 호박을 들고 온 거야.”
친정 엄마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정은은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